제9화 새로운 길
버스가 시골 종점에 도착하였고 리더는 곧장 이장의 집으로 찾아갔다. 아침 이른 시간이라 이장은 약간 당황해하였고 부인에게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였다. 리더는 이장과 식사를 한 후 차를 마시며 지난 몇 개월 동안 토요 학교를 진행해 오면서 뜻깊었던 일들과 아이들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골의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느냐! 함께 돌파구를 찾아나가자’ 하며 설득도 했다. 약 2시간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장의 마음이 약간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여세를 몰아 리더는 마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몇 사람을 함께 찾아가자고 했지만 이장은 여전히 두려워했다. 물론 그 두려움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리더는 이장과 헤어진 후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마침 ‘딜란’의 의붓아버지가 리더 쪽으로 걸어왔고 이 두 사람은 너무 반갑게 서로 현지식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시골 회관 근처 노상 찻집에 앉아 대화를 이어나갔다. ‘딜란’의 아버지는 물었다. “어찌 미리 연락도 없이 시골에 왔나? 평일 오전에 어쩐 일이야?" 리더는 그간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설명 하였는데, 물론 ‘딜란’의 아버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몇 잔의 차를 마시며 리더가 오늘 아침에 이장에게 했던 말들을 답답한 심정으로 다시 ‘딜란’의 아버지에게 했다. 리더의 말을 한참을 듣고 있던 그는 갑자기 제안을 했다. “우리 집에서 토요 학교를 계속하면 어떻겠냐? 우리 집이 그렇게 넓지 않지만 그래도 십여 명의 아이들과 충분히 공부할 수 있는 교실처럼 쓸 수 있고, 마당도 넓기 때문에 아이들이 놀기에도 적합하고… 그리고 우리 애들뿐만 아니라, 이웃집 애들도 내가 설득해서 데리고 올게, 우리 애들 5명 있고 이웃에서 한두 명씩 뽑으면 15~20명 정도는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이장네 집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오해가 생길 일도 없고… 어때?” 아주 멋진 제안이었다. 비록 교육적 환경이 마을 회관에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을 계속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는 것에 대해 기뻐했다. 그리하여 그 주 토요일부터 ‘딜란’의 집에서 토요학교가 계속되게 되는데 무려 12년간 지속되었다.
‘딜란’의 집에서 계속하게 된 토요학교는 이전과는 약간 다른 형태가 되었다. 초등부 세 개 반, 중등부 두 개 반, 고등부 한 개 반으로 구성되었고 교사들의 구성도 대폭 변화가 있었는데, 여러 명의 현지인 자원봉사자들이 시골 분위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더 이상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빈자리에 한국인들과 그들의 자녀들이 배치되었다. 이제 갓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딜란’은 고등부에 속했는데, 그녀의 동네 친구 한 명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드디어 그녀의 운명은 신으로부터 고르게 받게 되었다. '고르게 받다'는 '선택받다'의 순우리말이다. 신으로부터 고르게 받게 된 자들은 반드시 그 운명이 바뀌게 되는데, 만약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봄부터 시작된 토요 학교가 장소를 옮겨 새롭게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안되어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였고, 물에 흠뻑 젖어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처럼 모두가 축 쳐진 상태로 땀이 물이 되어 바닥에 뚝뚝 떨어지곤 했다. 학생들은 마당의 그늘을 찾아 간이 의자들을 들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병아리 무리였다. 그래서 더 이상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워 의논 끝에 한 달간 방학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