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명예 살인
방학 동안 시골에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해 여름, 엄청 더운 어느 날 아침, 강가에서 ‘딜란’의 학교 친구인 16세 여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경찰이 단순 자살로 아주 빠르게 사건을 종결시키면서 각종 의혹들이 난무했다. 자살 사건이 있기 몇 주전부터, 이 여학생은 가족들 모르게 비밀리에 남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이 남자 친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이 사실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여학생의 오빠가 다른 가족들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여동생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일명 ‘명예살인’이다. 그래서 어렴풋이 눈치를 채고 있던 경찰들조차도 가족사에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아 신속히 자살로 사건을 종결시켰다고 한다. 사건의 전후 상황을 고려해 보았을 때 ‘명예살인’이 거의 확실시되는데도 말이다. 살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추가 조사 없이 그냥 묻어버린 것이다.
‘명예살인’은 여성의 희생을 강요하는, 아직도 일부 이슬람권에서 간혹 발생되고 있는 전근대적 문화 혹은 풍습이다. 아직도 이슬람권에서 여성 인권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명예살인'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조선 시대 때 성행했던 ‘열녀’ 풍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근대 이전 시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여성들의 희생이 일방적으로 강요되곤 했다. ‘명예살인’이든, ‘열녀’이든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포인트는 가문을 위해 여성들의 인권이 착취, 유린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에서 남성은 면죄가 되고 여성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아마도 오늘날 여러 국가의 인권 상황을 평가할 때 고려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여성의 지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선진국일수록 여성의 교육 수준과 경제 능력이 높고 사회활동이 자유로운데 반해 후진국일수록 그렇지 않다. 다른 말하면 한 국가와 사회의 발전 수준 즉 경제를 포함한 문화적 수준은 여성의 사회 활동 참여 정도가 그 척도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전근대에서 근대적 문화로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여성들의 교육이었다. 1886년(고종 23년) ‘이화학당’을 시작으로, 멸망해 가는 조선 후기부터 서구 기독교 선교사들이 여성들의 교육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학교를 세우며 여성들의 세계관을 바꾸고 개화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쳤으며 1914년에는 최초의 여자대학생까지 3명이 배출되기도 했다. 이들의 활동은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가장 큰 초석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적 혹은 문화적 발전이 너무 짧은 시간에 급속하게 진행되다 보니 곳곳에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견고하게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서구 선진국들이 르네상스와 산업혁명 이후 약 300여 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룩했던 것을 대한민국은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이루었는데, 이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실로 엄청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당연히 크고 작은 부작용들이 발생했고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소나기가 내리면 처음에는 땅이 파이며 흙먼지가 날린다. 그러나 점차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고, 비가 갠 후에는 땅이 더 견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