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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진 May 13. 2024

유목민의 후손 예슈아

예슈아(‘예수’의 히브리어)은 유목민의 43대 손이다. 마태복음 1장에 따르면 첫 유목 생활을 시작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42대인데, 실제 역사(다윗에서 여고니야까지 15대)를 따지면 43대 손이 된다. 유목민의 후손으로 태어난 예슈아는 어릴 때부터 양 떼를 치며 생활했을 것이다. 아버지인 요셉은 목수였기 때문에 바빠서 양 떼를 비롯한 가축을 돌보는 일은 예슈아와 그의 형제들이 거의 도맡아야 했을 것이다. 무엇에 근거하여 그렇게 추측을 할 수 있는가? 유목 사회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유목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고 예슈아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게 되면 다른 길로 빠지게 되는데, 예를 들면 예슈아가 어릴 때 아라비아 반도 광야에서 도를 닦았다던지, 아니면 페르시아 지역에서 조로아스터교를 배우고 인도로 가서 힌두교와 불교를 배웠을 것이라는 등 억지 주장들이 난무하게 된다. 이런 주장들은 유목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앞에서 쓴 글들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듯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형태가 유목적 형태인데, 왜 쓸데없이 예슈아가 정주 문명의 중심인 페르시아와 인도로 가야 하겠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정주 문명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유목 사회는 단순하다. 목동은 아침에 일어나면 먹고 마실 것을 챙겨 양 떼를 비롯한 가축을 몰고 초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면 집으로 돌아온다. 가축들이 풀을 뜯을 때 목동은 목양견들과 주위를 경계하며 맹수들로부터 가축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다. 오늘날도 맹수들이 많은데, 다윗 시대를 비롯한 예슈아 시대는 멸종되지 않은 맹수들이 얼마나 더 많았겠는가? 아마도 그 시대에는 우리가? 아니! 동물학자들조차 알지 못하는 맹수들로 차고 넘쳤을 것이다. 다윗이 물맷돌로 맹수들과 싸우며 가축을 보호했듯이, 예슈아도 어린 시절을 초원에서 그렇게 보냈을 것이다. 


유목 사회는 부모의 일과 자녀들의 일이 나누어지는데, 일반적으로 가축을 돌보거나 양치는 일은 주로 자녀들이 한다. 형제들 중 제일 큰 맏형이나, 누나의 지시를 따라 역할을 분담한다. 부모들은 친족들이나 마을의 큰 일들 혹은 어른들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을 한다. 그래서 예슈아의 아버지 요셉은 목수로서의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해야 했고, 예슈아를 비롯한 자녀들은 가축을 돌보는 것과 잡다한 집안일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이었던 예슈아가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아 목수의 일을 했을 것이다. 나는 유목사회에서 수년을 살았기 때문에 예슈아의 어린 시절을 대충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다윗이 시편을 통해 고백한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용이 예슈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야훼 하나님이 성육신 하여 이 세상에 오셨는데, 이 성육신은 야훼가 인간의 문화 속으로 들어온 것이고, 인간의 문화 속에 들어온 예슈아가 33년 동안 유목 문화에서 살면서 자신이 메시아임을 나타내셨다. 한 인간이 다른 문화에 들어가서 완전히 동화되는데 약 30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그 문화에서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 청년시절을 보내야만 그 문화 속의 다양한 세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슈아가 33년을 이 땅에서 산 이유는 아마도 인간들이 자신의 문화 속에서 예슈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신이신 예슈아가 이 땅의 문화에 적응하고 배울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메시아인 예슈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은 유목이다. 그래서 성경의 많은 부분에 유목적 용어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목자’,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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