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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진 May 21. 2024

유목적 공동체(Nomadic Ecclesia)로의 전환

3. 성경적인 교회의 회복(가정 교회)-2

교회의 재 성육신에 이르는 열다섯 가지 강령


① 기독교는 종교적인 모임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 전에 `도`라고 불렸다. 그 이유는 문자 그대로 삶의 방식(`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체험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거룩한 장소에서 전문적인 성직자의 인도로 이루어지는 종교적인 모임에는 교회의 본질이 빠져 있다.


② 지금은 `성당-회당 시스템`을 변화시킬 때다.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로마가톨릭은 두 가지 요소에 바탕을 둔 종교적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나는 구약 시대의 성전을 기독교적으로 변형시킨 `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교 회당 예배를 따라 만들어진 `예배 유형`이다. 회당 예배의 다섯 가지 요소.(1. 찬양을 통한 예배로의 초청, 2. 기도와 간구, 3. 성경봉독, 4. 성경 말씀에 근거한 설교, 5. 예배를 마무리하는 축도) 이러한 예배의 유형이 기독교에 도입되면서 신앙고백 순서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사고방식과 회당을 연결시키는 `성당-회당`이었다.  헬라의 이교 철학을 끌어들이고 성(聖)과 속(俗)을 구별함으로써 성당-회당 시스템은 교회의 사회 개혁적인 능력을 삼켜버렸다. 그 후 로마 가톨릭은 이 시스템에 정경적인 권위를 부여했고, 루터는 복음의 내용은 새롭게 했지만 교회의 외적 형태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않았다. 침례교는 이 시스템에서 세례를 베풀었고, 퀘이커교는 이 시스템을 드라이클리닝했고, 구세군은 이 시스템에 유니폼을 입혔으며, 오순절 교회는 이 시스템에 기름을 부었고, 은사주의 운동은 이 시스템을 갱신했다. 이제는 이 시스템을 근본부터 바꿀 때가 왔다.


③ 제3의 종교개혁. 이신칭의의 복음 재발견한 루터는 신학의 개혁을 통해 교회를 개혁했고. 18세기 경건주의 갱신 운동을 통해 하나님과의 새로운 친밀성을 회복했다. 이것이 영성의 개혁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포도주를 담는 가죽 부대를 손보는 제3의 종교개혁, 곧 교회 구조의 개혁이다.


④ 교회건물에서 가정교회로. 신약시대 이후로는 `하나님의 집`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전에 거하지 않는다고 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가정집에서 모여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삶을 나누고, 모여서 함께 떡을 떼었다. 


⑤ 교회는 크게 성장하기 위해 오히려 작아져야 한다. 현대는 교회가 너무 커져서 `교제가 없는 교제 공동체`가 되었다. 역동성을 잃어버렸다. 신약의 교회는 보통 10~15명의 소그룹들로 이루어졌다. 


⑥ 교회는 목사 혼자 이끌 수 없다. 오중 은사로 구성된 사역 팀에 의해 가정 교회들이 연합되어 하나의 운동으로 네트워크화된다. 가정교회들은 장로들의 순회 사역을 통해 양육되어야 한다. 


⑦ 제대로 된 퍼즐 조각을 가지고도 퍼즐을 잘못 맞출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는 두려움, 전통, 종교적 질투심, 권력-통제의 사고방식 때문에 조각들을 잘못 맞추어 왔다. 은사별의 사역은 제도화된 기독교의 경직된 시스템 속에서 마치 얼음처럼 꽁꽁 얼어버렸다.

수단의 핍박

 

⑧ 관료적인 성직자의 손을 벗어나 만인제사장직으로. 신약에서는 모세와 같은 스타일의 `거룩한, 위대한` 한 사람에 의해 교회가 이끌어지지 않았다. 중세 교회는 신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방법을 이방종교들이나 구약 성경에서 따 왔다. 콘스탄티누스 이후로 점점 심화된 교회의 전문화는 하나님의 백성을 유아적인 평신도와 전문적인 성직자로 나누고, 교회 안에 권력지향적인 사고방식을 심고 피라미드 구조를 고착화시키면서 오랫동안 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장을 찢으신 예수님, 예수님을 통해 직접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만인제사장직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스템이 완전히 바뀌어져야 한다. 


⑨ 조직화된 형태에서 유기적 형태로. 두려움은 통제하기를 원하지만, 믿음은 신뢰하고 내맡길 수 있다. 

⑩ 우리의 예배를 예배하는 데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로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의식행위 중심의 예배 탈피해야 한다. 경제적인 면에서 볼 때 이러한 예배는 `투자는 많이 하는데 그 수익은 미미한`구조, 즉 가성비 '0'인 구조다. 

⑪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대신 교회를 사람들에게로. 

⑫ 진짜 만찬으로서의 주의 만찬을 회복하라.  예수님의 만찬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실제적인 만찬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임 안에 함께 음식을 나누는 사람을 회복시킨다.

쿠바의 핍박


⑬ 교단에서 도시 차원의 대집회로오늘날 교회들은 각기 자기 브랜드의 기독교를 판매하고 서로 경쟁을 하는, 전 세계적인 체인망을 가진 종교 기업들이 되어버렸다. 종교분쟁을 일삼는 정치적인 집단으로 전락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역 사회 안의 이웃과 삶을 나누고, 공동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도시 차원의 혹은 지역 차원의 대집회를 위해 가능하면 자주 모이도록 해야 한다. 도시 교회의 성경적인 모델로 돌아가야 한다.


⑭ 박해에도 요동치 않는 영성을 개발하라. 그리스도인들이 신약성경의 표준대로 삶을 산다면, 세상은 회개하고 돌이키든지 교회를 박해하든지 둘 중 하나의 반응을 할 것이다. 세상은 정치와 경제가 점점 더 이데올로기화되고, 사유화되고, 영적인 것으로 바뀜에 따라 대부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예수님과 함께 정죄를 당하는 그 자리에 서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박해에도 끄떡없는 구조를 개발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⑮ 교회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장 영적인 장소는 어디인가? 어떤 곳이 가장 영적이기에 힘든 곳, 그래서 가장 의미 있는 곳인가?  그것은 바로 배우자와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위선이 제거된 가정이다. 기독교는 종종 자신의 영적인 패배의 장소일 수 있는 가정을 도외시했다. 그리고 현실의 삶과 동떨어진 거룩한 성전 안에 인위적인 예배 의식을 갖추어 놓았다. 하나님이 가정을 다시 회복시키실 때 교회는 그 뿌리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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