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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 슈렉 Jul 15. 2024

[독서일기] 경이로운 수 이야기ㅣ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

경이로운 수 이야기 ㅣ 알브레히트 보이텔슈파허 ㅣ 전대호 ㅣ 해리북스

일찍이 이런 책 나왔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있어도 여러 번 있었을 테지만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다. 표지부터 눈에 확 들어왔다. 얼마 전 읽은 북 디자인의 소감이 이 책을 마주하자 온몸에 전율처럼 퍼졌다. 처음엔 복잡하겠지? 싶어서 손끝으로 몇 번을 매만졌으나 그래도 재밌을 것 같아 냉큼 대출했다. 


시작은 평이했다. 1부터 10 그리고 0까지 이어졌다. 각 수마다 짧게는 서너 페이지에서 많게는 예닐곱 페이지까지 할애한 분량이 제법 매력적이다. 해당 숫자가 갖는 역사적 의의부터 각종 실험과 사례들에 쓰인 일화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물론 그런 객관적 사실들을 저자의 고집스러운 '수 사랑'에 사로잡혀 한 권의 책으로 엮여졌다는 사실이 가장 만족스럽다!


하지만 10 다음부터 조금씩 난감하기 시작해진다. 1001과 1729 그리고 65537 하물며 5607249까지 이르면 도대체 이게 뭐지? 싶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애교다. 짐작했겠지만 소수점과 음수, 분수와 루트, 제곱, 그리고 파이와 무한대까지 이르면 해당 페이지에는 글자보다 숫자 그리고 서식이 더 많이 등장한다!


그래도 어쩌겠냐마는! 책이 갖고 있는 그 본질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그리고 곧은 자세를 유지하며 끝까지 매력을 뿜어낸다. 1분이 60초. 하루는 24시간. 한 달은 30일. 1년은 365일. 때려야 땔 수 없는 일상생활에 밀접한 수의 역할부터 수학이라는 학문적 영역까지 굳이 확장하지 않더라도 쏠쏠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여러 형태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가장 재밌던 부분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폴란드 미술가 롬나 오팔카는 캔버스에 숫자 1을 적고 이어서 2를 적고 이후 계속 숫자를 차례대로 적으며 작가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80살이 되던 해 그가 마지막으로 그려 넣은 수는 바로 5,607,249였다. 현존하는 인류가 기록으로 남은 역사를 바탕으로 직접 센 가장 큰 수다! 


아쉽다면 저자가 서양 학자이기에 동양에서의 숫자에 대한 거론은 거의 없는 부분이다. 서양에서 13의 역할이 동양에서는 4인데. 그래서 병원과 큰 빌딩엔 4층 대신 F층이 있거나 아예 3층 다음 5층으로 이어지기도 하지 않던가. 또한 60이란 숫자를 소개하면서 혹시나 싶어 60갑자가 등장하지 않을까 했으나 어디에도 없다. 물론 12간지도 없다. 문화의 차이인 만큼, 또 비슷한 주제로 동양의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책이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다. 찾아봐야겠다!


학창 시절엔 어떻게든 1등하고 100점 맞으려고 애를 쓴다. 어른이 되면 고작 월급 몇 푼 더 벌려고 아등바등 애쓰며 산다. 대출금에 매달 납부해야 하는 이자. 그리고 살고 있는 집의 규모도 결국 숫자로 규정지어진다. 어쩌면 숫자란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상황과 진심과 객관적 사실들을 설명해 주는 가장 극단적일 만큼 정확한 지표가 돼버리고 말았다. 


씁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 매일 사용하는 숫자에 대한 숨어있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꼭 한 번 정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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