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함을 나누던 그리움.
나의 10대는 엄마와의 전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고, 나의 20대는 엄마와의 대립으로 보내야 했다. 이제는 나의 30대가 와서 엄마와의 타협으로 즐거움만이 남을 줄 알았으나 나는 이제 엄마가 없다.
나의 엄마는 너무 빠르게 나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아니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의 길 위에 발을 내디뎠다. 언젠가 나도 갈 길이겠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가버린 엄마가 조금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있은 거 같다.
혼자 살던 기간이 길었던 나는 해가 저물고 모두 퇴근을 해 집에 삼삼오오 모일 시간쯤이면 괜스레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차피 자취생이라 퇴근을 해도 나는 혼자였는데.. 그럼에도 나는 이제 전화할 곳조차 없어져 하루의 일상을 시시콜콜한 상사욕을 혹은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점심은 드셨는지 전화를 하고 퇴근을 하며 오늘도 야근인 거 같다며 하루의 투정을 하며 통화를 하던 엄마였다. 아침에 전화를 하지 않는 날이면 점심쯤 전화기가 불이 나게 울린다. 그렇게 받으면 뾰로통한 엄마의 목소리는 [넌 네 엄마가 뒤졌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지?]라며 타박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침이라 오늘은 좀 바빴어~ 에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허허 웃어넘겼다. 어릴 땐 저런 말이 상처였지만 나도 굳은살이 생긴 건지 이제는 아프지 않은 예민해지지 않는 말이었는데.. 괜찮아지니 이제는 듣지 못하는 말이 되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엄마의 건강 상태가 확진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못하는 불속성의 효녀인 나는 왜 미루기만 했을까 왜 안일하기만 했을까 하는 생각들이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몰아치는 밤들이 자주 오곤 한다. 심각해진 작년 엄마의 몸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 적으로 알고 있었기에 그 모습이 두려워 엄마를 보러 오는 횟수를 줄였던 걸까? 아니면 엄마를 보면 볼수록 엄마의 여행길에 마음이 저밀까 그랬던 걸까? 지금도 그 답은 모르겠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엄마와의 이별을 직감하고 있던 걸 지도 모른다.
상사의 욕을 하고 흉보고 싶은 친구의 흉을 다른 사람과 하지 않고 엄마와 했었다. 엄마도 어디다 말하기 민망스러운 이야기들을 나에게 하곤 했다. 가끔은 친구처럼 가끔은 언니처럼 그렇게 엄마와 나는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친해진지 이제 만 4년일까? 아니 3년일까? 엄마와 할 이야기 엄마에게 해줄 이야기 엄마와 보고 싶은 것들 엄마와 나누고 싶은 감정들이 산떠미처럼 밀려있었는데 이제는 밀린 숙제가 아닌 할 수 없는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엄마와 하고 싶었던 소소한 매일을 나는 이제 글로 적어가며 달래 보려고 한다. 아마 어렵겠지 달래 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더욱 나의 슬픔만을 더 끄집어내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만일 누군가가 엄마와 딸은 원래 이런 건가? 하며 고민하고 있다면 나의 글에서 조금은 답을 찾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