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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시율 Sep 06. 2023

엄마, 23년 9월 6일 이야기야

55일째 여행 중 인 엄마

 하루종일 너무 잠밖에 안 오고 무기력해서 왜 이러나 생각해 보니 어제 무리를 한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하루 만에 안방과 거실 그리고 작업실까지 치우는 일은 너무 무리수를 둔 일이었단 말이지!! 이제 완전 이사 첫날처럼 집이 살짝 휑해졌어.

 

 그렇게 집이 휑해지고 나니 이사한 날이 생각나더라고 엄마와 동생 그리고 나까지 엄마짐에 내짐을 우리 집으로 옮기느라 낑낑거리고 정리한다고 있는 힘없는 힘 다 빼서 막바지엔 우리 모두 너무 지쳐서는 늘어져 누웠던 거 기억하려나? 이사 중이라 아직 쓸고 닦지도 않은 바닥에 결벽증이던 엄마마저도 지친다며 누워버렸잖아. 그때 진짜 짐이 이렇게 많냐며 좀 버리라고 소리치면서도 정리하던 동생을 보며 깔깔거렸는데..

 에어컨도 없어서 우리 모두 덥다 덥다 노래를 부르며 땀 찔찔 정리하다가 결국 차로 도망갔었는데 에어컨 틀고 헥헥거렸었잖아ㅋㅋ 근데 이번엔 에어컨이 있는데도 얼마나 덥던지 나 찜닭 되는 줄 알았어!! 아니 정말 왜 그런 짓을 할 생각을 한 걸까? 엄마 집 정리 하면서도 힘들었으면서 이번에는 내 집을 정리한다고 근데 것도 미쳐서는 하루 만에 다 끝냈단 말이지.. 나 그래서인지 오늘 진짜 너무 늘어지고 잠만 엄청나게 잤어.


 엄마 없는 빈자리가 느껴지는 게 그렇게 가구 옮기고 방 자리 바꾸고 집 치우면 엄마에게 사진 찍어 보내며 힘들다고 징징거렸는데 엄마가 없으니까 집 치운 거 자랑할 사람이 없더라고.. 그래도 어딘가에서 볼 거라 생각하고 잘 치워봤어. 집을 치우고 나니 엄마가 없단 걸 좀 더 느끼게 된 거 같아서 살짝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집이 잘 치워졌으니 그냥 마음을 또 다잡아 봤어.

 그렇게 힘든데 오늘 보험 상담도 받고 왔어. 엄마가 관리하던 보험들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뭘 살리고 뭘 죽일지도 모르겠어서 일단 내 거 먼저 다시 상담받고 다시 시작하려고 내 거 설계받고 나면 동생이랑 아빠 것도 다시 다 정리해야겠지 엄마는 이 정신없는걸 어찌 다 하고 살았던 걸까 싶더라.. 

 

 엄마의 일을 내가 한다는 것이 누군 이해 안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아무래도 내 인생은 없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는 이 인생도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고 생각해. 아빠를 지탱하던 엄마가 없으니까 그래도 누군가는 우리 집의 내무부 장관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그렇겠지? 엄마가 하던걸 동생이 혼자 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니까 같이 해 나아가야 하는 거겠지?

 오늘 설계사에게 세밀하게 나의 니즈도 전달했어 내가 원하는 보장이 뭐고 내가 대비하고 싶은 게 뭔지 딱 말해뒀고 그걸 기반으로 설계해 주시기로 결정했어 계약을 할지 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설계해 오는 거 보고 앞으로 나의 보험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의 보험도 맡길 수 있을지 없을지 결정해 보려고 해. 아직 나도 모르는 게 많아서 최대한 이것저것 따지고 꼼꼼하게 해 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엄마가 만일 날 보고 있다면 답답하기도 하겠지? 잔소리가 없으니 또 엄마가 부재중이라는 게 새삼 느껴지네.


 이렇게 나는 엄마에게 할 말이 많은데 엄마에게 답을 들을 수 없다. 엄마랑 좀 더 이야기할 걸 엄마에게 좀 더 많은 걸 배워둘걸 그럼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답답하고 끙끙거릴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왔다. 엄마가 한다고 그냥 나 몰라라 할게 아니라 더 자세히 물어보고 어떤 걸 꼼꼼히 봐야 하는지 따져보고 엄마가 뭘 고민하고 있는지 엄마에게 먼저 물어볼걸. 왜 나는 엄마는 엄마니까 알아서 잘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걸까요?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엄마도 이번생이 처음이고 엄마도 모르는 것 고민하는 것투성이었을 텐데 왜 엄마니까 다 알 거라고만 생각했을까요? 엄마에게 좀 더 친구처럼 다가가지 못했던 지난 일이 이제 후회한다고 바꿀 수 없을 텐데 후회는 드네요. 


 나에게 만일 이 일이 꿈이라 엄마가 여행을 가기 전이라면 나는 좀 더 빨리 엄마에게 친구 같은 딸이 되도록 노력해 보려고요. 엄마가 고민이 생기면 편하게 이야기하고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더 똑똑한 딸이 더 많이 아는 딸이 되어 보려고요. 그렇게 엄마에게 [나 바쁜데 이따 이야기해]가 아니라 [엄마 그건 이거고 이건 그거야 그리고 이건 내가 이따 가서 알려줄게] 하는 엄마가 몇 번을 물어봐도 또 또 또 웃으며 대답하는 그런 딸이 되어보려고요.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이 일은 꿈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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