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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Dec 25. 2024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는 아이

그래도 행복했던,


그게 나였다.

가장 먼 곳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도 산타클로스를 믿어 본 기억은 없다.

왜 믿지 않았는지 딱히 이유도 없다. 

그저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같은 동화 속 주인공의 느낌이었다고 해야 할까?...

루돌프 사슴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으며 전 세계의 착한 어린이들을 찾아 선물을 주는 산타할아버지는 영락없는 만화 속 주인공이었다.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주실 거야~"라는 노랫말이 어렸을 땐 너무 강렬해서, 

우는 것은 정말 나쁜 것이구나 생각을 했던 기억은 있다.


아빠, 엄마가 산타를 가장해서 선물 꾸러미를 트리 아래 놓아두었을 때, 

나는 오히려 산타가 왔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기쁜 척 최대한 연기를 하곤 했다.

아빠, 엄마가 기뻐하시는 모습에 서운함을 끼얹고 싶지가 않아서였다.





산타를 믿지 않았지만, 어릴 때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삭막하지 았았다.


'라떼는 말이야~'처럼 내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떠올려 보자면, 


크리스마스땐 언제나 교회에서 하는 공연이 있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목자의 경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그러나 찬란하게 부활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배역을 맡아 열심히 연습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서고, 초대한 부모님을 향해 마구 손을 흔들던 기억...


어두운 조명 아래서 신앙고백의 시와 편지를 낭독하던 기억...


친구들과 캐럴송을 부르며 선생님을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던 기억...

우리를 흐뭇하게, 신기하게 바라보시는 어른들을 보며 왠지 우쭐했던 기억...


아빠, 엄마와 명동 거리를 걸으며 사람들과 마구 어깨를 부딪히며 걸었던, 추운 겨울밤.

따뜻한 저녁을 함께 먹고 예수님이 등장하는 성탄절 영화를 보는 것은 빼먹으면 안 되는 루틴이었다.


며칠 전부터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었던 기억.

산타 할아버지와 선물, 크리스마스트리를 큼직하게 그리거나 색칠한 위에 여러 가지 반짝이 가루, 단추 등을 붙여서 한 장 한 장 정성을 다해 만들었던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문방구에서 카드 재료를 쇼핑?! 하던 기쁨도 있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색색의 반짝이 가루가 아니었을지...

각종 버튼과 크고 작은 꾸미기 인형들, 칼라 도화지, 하얗고 보송했던 솜 몇 조각...  


직접 만든 카드를 전해주던 설레는 마음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또 친구가 만들어 준 카드를 받아 보며 감격했던 마음도.

그런 손편지의 나눔이 얼마나 귀한지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았어도, 그가 과연 내가 바라는 선물을 줄까, 안 줄까 궁금했던 기억은 없어도 충분히 따뜻하고 충만했던 어릴 적의 크리스마스 기억들이다.








그 후로 여러 차례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지만,  이렇게 다채로운 기억은 없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와 더 화려한 케이크, 각종 이벤트들로 볼거리, 즐길 거리는 넘쳐 나는데, 왜 죄다 똑같은 느낌일까...  


단순히 동심을 잃어서일까? 

값비싼 이벤트들이 감춘 상업적인 장삿속에 눈살이 찌푸려져서일까?


그럴 때는 몰래 숨겨둔 과자상자를 열듯, 조심스레 나의 오래된 크리스마스 기억을 하나씩 소환해 본다.  뮤직 박스를 열었을 때처럼, 그렇게 먼 크리스마스 기억들이 흘러나오고 마음이 행복해진다.


산타할아버지가 주시는 선물이 전부가 아니었던, 

더 많은 것들로 채워졌던 내 추억들이 참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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