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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11. 2024

"간단히"라는 말을 금한다

김밥 예찬



엄마가 김밥을 직접 싸 주셨다.

엄마 김밥.


초등학교 소풍 날 아침이면 늘 주방 가득 김밥재료와 탐스럽게 쌓여져 있는 김밥을 볼 수 있었다.

그 땐 정말 짐작조차 못했다.


김밥 재료 하나하나를 다 준비하고 

밥에 새콤달콤 단초물 간을 맞추어 놓고,

김 위에 모든 재료를 정성스럽게 담아 터지지 않게 숨을 고르며 꾹꾹 눌러 감싸고,

설레는 마음으로 한 줄 한 줄 일정한 크기에 맞춰 썰고,


그렇게 모양과 크기가 잘 맞추어진 김밥들만 골라서 

도시락에 예쁘게 담아야 한다는 것.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내 도시락 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도시락 또한 몇 개씩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소품때면 간단히 입 속에 쏘~옥 들어갔던 김밥은 

엄마의 '밤샘 노동'의 결실이었던 것이다.


나는 "간단히 김밥이나~~~"라는 발언을 결단코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김밥이라는 메뉴 앞에서는.








입에 간단히 먹는 김밥 알에는 영양 밸런스를 완벽하게 갖출 수 있다.

탄, 단, 지는 물론이고 비타민, 미네랄, 식이섬유까지...

김밥을 먹을 때마다 이 점을 생각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밥은 일제 강점기떄에 일본의 김초밥이 우리나라 스타일로 토착화된 음식이라는 유래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음식재료로 각종 다양한 소를 만들어 돌돌 말아 한 번에 골고루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김밥만큼 맛과 재료의 스펙트럼이 큰 음식이 있을까?

어떤 재료를 넣어 만드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먹는 즐거움이 있다.

대부분은 다 맛있다는 것도 미스테리이다.


이 미스테리의 원인은 "어울림"에 있는 것인지 모른다.

각각 개성있는 맛과 색을 가진 재료들도 김밥의 소가 되어 또르르~ 말려 김으로 쌓여지는 순간, 

기가막히게 서로 어울리며 어김없이 제3의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하지만 김밥이 내게 주는 가장 큰 감동은 "추억'에 있다.

소풍 때면 유난히도 잠이 일찍 껬지만, 

아무리 일찍 깨어나도 엄마는 늘 주방에서 김밥을 말고 계셨다.


아들이 첫 소품을 가던 날,

나 또한 거의 밤을 새다시피 하며 김밥으로 첫 도시락을 준비했더랬다.

입 짧은 아들이 도시락을 깨끗이 비우고 왔을 때의 기쁨이란!


그렇게 김밥이라는 음식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노동이고

그 노동을 기꺼이 감수하며 만드는 사랑의 마음이기도 하다.


요즈음은 김밥 가게들도 너무 흔하고 클릭 몇 번이면 간단히 집 앞으로 

배달되어 오는 세상이니 그야말로 '간단하고 가벼운' 한 끼 식사일 뿐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오늘 엄마가 직접 만들어 가져다 주신 김밥 도시락을 보니 나는 영화처럼 과거의  장면으로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이른 새벽 소풍갈 생각에만 들떠 쌓여진 김밥들을 보면서도, 엄마의 밤샘 노동은 상상조차 못하는 딸.  그런 딸을 세상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던 엄마의 얼굴이 당장이라도 닿을 듯 가깝게 느껴졌다.


엄마의 김밥은,

여전히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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