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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12. 2024

약속이 취소되면 나는 왜 기분이 좋아질까?

덤으로 얻은 시간이란


약속시간 2시간 전.


아직 시간있으니까... 느긋하게 오전 일과를 계속하다

어느순간부터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한다.

지금 꼭 마무리를 해야 하는 일처럼 금방 손을 못 떼더니,

급기야 시간에 쫓기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약속 시간 1시간전.


하던 일을 멈추고 주변정리를 한다.

입을 옷을 미리 꺼내 밖에 걸어놓는다.

간단한 화장, 머리를 손질한다.


30분전.


조금 더 마음이 급해진다.

들고 나갈 가방을 챙긴다.

지갑, 핸드폰, 볼펜과메모지, 자동차키, 그리고 책.

읽든지 안 읽는지... 책은 무조건이다.

.

.

.


막 나서려는 순간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아, 미안해 어떻하지?  애가 갑자기 조퇴하고 집에 오게 되었어.

정말 미안해. 오늘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미안, 미안~~"


미안해를 반복하는 지인의 전화에 당황했지만, 

전화를 끊고나자, 

이런...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지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진심이었다. 

약속이 취소되었는데, 나는 왜 기분이 좋을까?


외출복을 냅다 벗고,  빛의 속도로 되돌아감기를 하듯 외출전 상태로 돌아왔다. 

'와아~ 편안하다.'

나는 비싼 음식을 덤으로 더 얻은 것처럼 기쁘고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이런 내 마음이 당황스러워 심지어 친구를 보고 싶었던 마음이 거짓이었을까를 의심해 보았다.

그렇지 않다. 나는 진심 그녀를 보고 싶었고, 만날 약속에 기뻐했다. 


그럼 이 모순된 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만남이든 만나는 시간과 자리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편이다.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잘 듣고 최대한 정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주고, 

오해없이 감정을 소통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쉬운 시간은 아니다. 


더구나 상대방의 힘든 모습이나 어려운 문제상황을 듣게 되는 날에는 한동안 계속 마음이 쓰인다.

단 며칠이라도 감정의 AS를 해야 하는 시간을 겪어야 한다.





그런데, 약속이 취소되는 순간 나는 아마도 이런 에너지의 소진으로 부터 오는 피로를 덜 수 있다는 무의식적인 판단을 하게 되는것 같다.  친구를 만나는 기쁨은 잃었지만,  동시에 피로를 있는 휴식을 얻은 셈이다. 


이렇게 보면, 약속이란 내게 매우 '이타적'인 행위라는 생각이 든다.

내 시간과 쉼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방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에너지와 진심을 쏟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


그런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누군가와 약속을 하고, 기꺼이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특히나 이번 주에는 황금같은 주말에 중학생 동창들과의 약속이 있다.

피곤한 시간을 예측할 수 있기에 나는 솔직히 마음 한 구석에 이 약속이 취소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먼저, 내가 약속 취소의 주범이 되는 상황은 또 싫다. 

재미있는 건, 다른 4명의 친구들과 나와 비슷한 생각을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만나게 될 것이고,  이런 생각을 했다 할지라도 실제 만남의 시간에 누구보다 서로를 반가와하고 기뻐하고 뜨거운 마음을 나누게 것을 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즈음에도 다들 기진맥진 에너지를 소비한채 무거운 피로감으로 쓰러져 버릴 것이란 것도.  


약속이란 분명 내게 이타적인 행위인데, 결국은 이기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지치고 피로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 그(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의 선택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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