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사는 것만큼이나
요양병원에 대한 꽤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지만,
실제 방문한 그곳은 상상만으로는 부족한 곳이었다.
시설도, 환경도, 분주히 움직이며 주사며 약을 가지고 다니는 직원들의 모습도
일반 병원도 다름이 없었는데, 왜 그럴까?...
아마도 그곳의 주인공, 환자분들의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늙고 쇠약해진 몸에는 죄가 없건만,
그들은 마치 시설에 집단 수용되어 있는 듯 기진맥진한 몸짓이었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
그곳에 있자니 정말 많은 감정들이 속에서 출렁이고, 일렁였다.
요양병원 복도의 긴 의자에 앉아 있자니,
갑자기 내 인생의 시간과 장소가 마구 확대되면서 허우적대는 내가 보였다.
쓰러뜨릴 듯이 거대한 슬픔과 인생의 희로애락들이
격하게 몰려와서 나는 무언가 꽉 붙들어야 할 것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파도같이 몰려오는 이 거대한 감정들 중 하나에도
속절없이 휩쓸려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흐려진 사야로 생명의 동아줄을 찾듯 나는 갑자기 필사적으로 찾았다.
지금 내가 붙들어야 생각, 내가 꽉 잡고 놓치지 말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까?
삶의 의지? 희망? 무슨 희망?
아들? 남편? 부모님? 그들의 위한 헌신? 어떤 헌신?
진실? 거짓 없이 투명하게 사는 것? 그래서?
한 순간 태풍이 휘몰아치듯 마음이 쑥대밭이 된 후에야 나는 겨우 진정이 되었고,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졌다.
'잘 살아야 해....'
평온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잘 죽어야 해...'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만큼이나 중요해...'
잘 죽는 것. 어떻게?
나는 그런 죽음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확실한 건
저 방의 어르신들 모습처럼 그저 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죽음을 맞고 싶진 않다는 것이었다.
.
.
.
평온한 목소리는 계속 같은 잔잔하게 말을 이어갔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잘 사는 건, 결국 잘 죽기 위해서인 거야...'
아, 그렇구나...
내 인생에서 삶과 죽음은 강대강으로 맞서 있는 것이 아니구나.
그저 등을 기대고 있을 뿐, 같이 존재하는 것이구나...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이
그렇게 삶과 죽음도 내 인생에서 다르지 않아 보였다.
잘 살아내면, 잘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진심으로 살아내면,
당장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당장 죽어도 억울하지 않게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후회 없이 진심으로 살아내면 될 것 같았다.
다만, 소망이 있다면,
내 죽음의 기다림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
삶에 대한 자포자기한 상태,
혹은 집착을 버리지 못해 멱살 잡혀 끌려가는 심정,
언제 내 차례가 올까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가 아니라,
잘 살고 있는 그 순간이 죽음의 순간으로 바로 연결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고, 요양병원을 나오는 길.
햇살이 너무 눈 부셔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순간 나는 내 바램이 무엇인지 확실해졌다
내 죽음이 '갑작스레' 찾아와 주는 것.
준비할 시간조차 부질없어 보였다.
나와 주변 사람들이 내 죽음을 대비하며 치러야 할
많은 시간과 희생이란 얼마나 소모적인가...
나는 그저 잘 살아가던 어느 날, 눈 부신 햇살 때문에 눈을 감아버리듯
그렇게 나의 죽음이 갑작스레 찾아와 주길 바란다.
덕분에 오늘 하루, 한 순간순간을 열심히 잘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