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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리 Jun 27. 2024

초라한 남편의 아침상

주책과 감동 사이



통밀빵 한 조각에 아몬드 3알.

커피 한잔.




어쩌다 보니 아침 걷기가 길어져 조금 늦게 도착했다.

남편은 부스스 일어나, 나름 자기 아침 식사를 챙겨 먹고 있다.

 

"이것만 먹으면 될 것 같아..."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웃는 듯, 마는 듯,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하는 남편을 보자니

나는 순간 멈칫!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주책.....이다. 


말없이 식탁 옆으로 돌아가 

"과일이나 야채라도 좀 더 줄까?" 물었지만,

아니라고 한다.


왜였을까?...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순간은

지나친 감정의 과잉임에 틀림없다.


아침 식사가 평소보다 늦어서 미안했나? 고작 10분 남짓인데?

초라해 보이는 접시 위의 음식들 때문에?

이것만 먹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안 쓰러워서?

'아닌데...'


이 정도 이유도 눈물이 핑~할 만큼 마음 짠할 일은 아니다.

왜일까?

짧고 강렬하게 지났던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간의 아침식사 루틴을 되돌아봤다. 


커피와 과일 정도로 간단히 먹는 나와 달리, 

남편은 좀 거창하다. 탄, 단, 지를 골고루 갖춰야 한다.


'아메리칸 스타일은 카페 메뉴인데?'

라는 생각에는 벌써  번거로운 조리 전후 과정에 대한 

불만이 한가득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신선함이 생명인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위해 

아침부터 진을 빼며 서둘러야 하는 마음도 불편했다. 


'아, 차라리 밥을 먹는 게 낫지'

종류별 초록 야채, 잎 아닌 야채, 견과류(종류별로), 토마토, 

달걀이나 두부, 버섯, 콩,

호밀빵이나 감자(혹은 고구마),  

그릭요구르트, 치즈 등등을 매일 조금씩 달리하며

커다란 접시에 준비한다.

드레싱도 매일매일 새로 만든다.


그렇게 재료를 준비하고 접시에 예쁘게 잘 담아내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종류, 색깔, 먹기 좋은 순서 등등을 고려해서 담고

나무 쟁반에 커피와 포크, 스푼을 겸해 테이블에 딱 올려놓으면, 

그제야 휴우~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긴다.




" 내 앞에 끼니때마다 밥상을 딱 놓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남편의 모습을 보자니, 

아, 이건 아니다 싶다.


내가 좀 힘들고 번거로워도 

내 남편에게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것으로 차려내주는 것이 

초라한 접시 위의 음식을 먹는 남편을 보는 것보다 

일백 번 더 나을 것 같다.



"늦어도 10분인데, 다음부터는 잠깐만 기다려봐"

출근하는 남편을 향해 조용히 한 마디 했다.


"아, 늦었다고 바쁘게 챙길까 봐 미안해서 그랬지, 

다녀올게"


오늘 아침 작은 접시 위의 통밀빵 한 조각이 전부였던 아침식사에는 

이런 남편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걸까?...


남편이 웃는 듯, 마는 듯 쑥스럽게  바라보던 표정에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 것도

이런 마음이 서로에게 오고 간 것일까?


아,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과한 표현이 아니었다.

부부간의 이 무서운 이심전심.

이 때문에 주책과 감동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드나 보다. 


굳이 언어가 오가지 않아도

대충 그 마음이 짐작이 되거나, 

서로 알아차리게 되는 감정의 소통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기도

새삼 귀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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