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책과 감동 사이
통밀빵 한 조각에 아몬드 3알.
커피 한잔.
어쩌다 보니 아침 걷기가 길어져 조금 늦게 도착했다.
남편은 부스스 일어나, 나름 자기 아침 식사를 챙겨 먹고 있다.
"이것만 먹으면 될 것 같아..."
내가 뭐라 할 새도 없이
웃는 듯, 마는 듯, 겸연쩍은 표정으로 말하는 남편을 보자니
나는 순간 멈칫!
눈물이 핑 돌 것만 같았다.
주책.....이다.
말없이 식탁 옆으로 돌아가
"과일이나 야채라도 좀 더 줄까?" 물었지만,
아니라고 한다.
왜였을까?...
다시 생각해 봐도 그 순간은
지나친 감정의 과잉임에 틀림없다.
아침 식사가 평소보다 늦어서 미안했나? 고작 10분 남짓인데?
초라해 보이는 접시 위의 음식들 때문에?
이것만 먹고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안 쓰러워서?
'아닌데...'
이 정도 이유도 눈물이 핑~할 만큼 마음 짠할 일은 아니다.
왜일까?
짧고 강렬하게 지났던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간의 아침식사 루틴을 되돌아봤다.
커피와 과일 정도로 간단히 먹는 나와 달리,
남편은 좀 거창하다. 탄, 단, 지를 골고루 갖춰야 한다.
'아메리칸 스타일은 카페 메뉴인데?'
라는 생각에는 벌써 번거로운 조리 전후 과정에 대한
불만이 한가득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신선함이 생명인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를 위해
아침부터 진을 빼며 서둘러야 하는 마음도 불편했다.
'아, 차라리 밥을 먹는 게 낫지'
종류별 초록 야채, 잎 아닌 야채, 견과류(종류별로), 토마토,
달걀이나 두부, 버섯, 콩,
호밀빵이나 감자(혹은 고구마),
그릭요구르트, 치즈 등등을 매일 조금씩 달리하며
커다란 접시에 준비한다.
드레싱도 매일매일 새로 만든다.
그렇게 재료를 준비하고 접시에 예쁘게 잘 담아내는 것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종류, 색깔, 먹기 좋은 순서 등등을 고려해서 담고
나무 쟁반에 커피와 포크, 스푼을 겸해 테이블에 딱 올려놓으면,
그제야 휴우~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긴다.
" 내 앞에 끼니때마다 밥상을 딱 놓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남편의 모습을 보자니,
아, 이건 아니다 싶다.
내가 좀 힘들고 번거로워도
내 남편에게 최선을 다해서 좋은 것으로 차려내주는 것이
초라한 접시 위의 음식을 먹는 남편을 보는 것보다
일백 번 더 나을 것 같다.
"늦어도 10분인데, 다음부터는 잠깐만 기다려봐"
출근하는 남편을 향해 조용히 한 마디 했다.
"아, 늦었다고 바쁘게 챙길까 봐 미안해서 그랬지,
다녀올게"
오늘 아침 작은 접시 위의 통밀빵 한 조각이 전부였던 아침식사에는
이런 남편의 마음이 담겨 있었던 걸까?...
남편이 웃는 듯, 마는 듯 쑥스럽게 바라보던 표정에
순간 울컥하는 감정을 느낀 것도
이런 마음이 서로에게 오고 간 것일까?
아,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이 과한 표현이 아니었다.
부부간의 이 무서운 이심전심.
이 때문에 주책과 감동 사이를 끊임없이 넘나드나 보다.
굳이 언어가 오가지 않아도
대충 그 마음이 짐작이 되거나,
서로 알아차리게 되는 감정의 소통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맙기도
새삼 귀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