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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아빠 Jun 16. 2024

法悅曲(법열곡)

마음 하나에 펼쳐진 우주 / 이애주 선생 추모공연

  2024년 5월 25일 오후 5시 남산 국악당에 ‘법열곡’이 올려져 관람했는데, 작품은 3년 전 작고하신 이애주 선생을 추모하는 의미를 담은 공연이었다. 


  ‘승무(僧舞)’는 원래 불교의 예식 중 ‘영산재(靈山齋)’ 의식에서 ‘범패(梵唄)’에 맞추어 스님들이 추던 춤인데, 조선 후기에 이르러 민간에서도 이어지다 지금은 거의 민속춤의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은 해방 이전 한성준에서 이후 한영숙, 이애주로 이어지며 지금에 이르렀다 하며, 시인 조지훈의 ‘승무’라는 작품에서 보였듯 정중동의 미학이 있는 한민족 모든 춤의 원형이 들어 있는 의미 있는 춤이다.


  이애주 선생은 승무가 한민족 전통춤의 핵심을 아우르는 춤의 기본인 동시에 민속춤이자 고도로 정제된 예술 춤이라는 생각에 평생 승무를 연구하고 췄는데, 1970년대 대학가 ‘민중 문화운동’의 첫 세대로 일본어에서 나온 말인 ‘무용’보다 ‘춤’이란 단어를 사용했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한풀이 춤’ 등 민주화 집회 현장에서 췄던 춤 때문에 ‘시국 춤꾼’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대한민국의 무용가였다. 



  

  분명 관람권에는 좌석의 번호가 있었는데, 5시 정각을 넘었어도 관객이 객석으로 이동하지 않아 이상함을 느껴 안내 직원에게 물어보니 공연은 지하 공연장이 아닌 지상의 마당에서 먼저 시작한다고 했다. 잠시 기다렸더니 한 무리의 스님들과 한 무리의 춤꾼들이 생전 이애주 선생이 승무를 추다 찍힌 대형 사진 앞에서 향로에 향을 올리고 스님들이 독경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 드리는 사전 의식을 하였는데, 마친 뒤 모든 관객이 객석으로 입장하고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산중작법 // 복청게 // 천수 / 바라춤 // 사방찬 // 도량게 / 나비춤 // 법고춤 // 거불 // 상단축원 // 사다라니 / 바라춤 // 향화게 / 나비춤 // 승무 // 회향게 // 공덕게 //  위 순서로 이루어진 공연은 절집에서 보던 불교의 ‘영산재(靈山齋)’였다.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했다는 영산재는 법회에서 쓰는 탱화를 무대 스크린에 띄워놓고 ‘불법(佛法) 듣기를 원하옵니다’를 시작으로 ‘사방이 청정해졌습니다’, ‘더러운 것이 없으니 나비처럼 이 자리에 앉으소서’, ‘세간 중생들은 깨달음을 얻으시라’ 하며 법고를 울렸으며, 대중들은 ‘삼보에 귀의하니 이 자리에 광림 하여 불공을 받으시라’ 하였고, 스님들은 ‘영가의 명복을 빌며 수병장수 무병장수 자손만대 소망 성축을 기원’하면서 모자람 없이 베풀어질 것을 간청하고 ‘모든 중생이 깨달음에 이르게 해 달라’며 엎드려 연꽃을 바치며 엄숙한 의식을 마치고 이후 승무가 본격적인 춤판의 대미를 장식했다.     




  <인상 깊었던 장면>


  1. 마당에서 제례 의식

  한민족 민중의 예술은 주로 마당에서 행해졌다. 관혼상제가 그랬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던 유랑집단인 산대놀이, 남사당이 그랬다. 그렇게 마을에 큰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마당에 누렇게 황토물들인 천막으로 넓은 그늘을 만들고 공연이라면 관객이 의례 추임새를 넣으며 연희자와 관객이 모두 하나 되어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했다는 게 우리의 전통인데, 요즘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면 마당에서 하는 공연을 쉽게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법열곡’은 시작을 마당에서 했다. 가만히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이애주 선생의 대형 사진 앞에 바친 향로와 향불이 지하 공연장의 소방 안전에 문제가 될 것 같아 예방 차원에서 만들어진 콘셉트가 아니었을까 추측되지만, 그 덕분에 사방을 빙 둘러앉은 관객의 얼굴의 바라볼 수 있어 이애주 선생이 생전에 교류했던 지인들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어쩌다 문화예술계 선생님들을 많이 알아 그날 인사 나눈 선생님들을 모두 호명할 수는 없지만, 기억나는 딱 한 분을 꼽자면 한국 마당극의 창시며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판소리로 만들어 부른 임진택 선생님과 나눈 따뜻한 인사였다. 


  그렇게 둘러앉은 관객들은 서로의 종교는 다르지만, 불교식으로 행하여진 의식에 손 모아 합장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고 또 선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애주 문화재단’의 제자들의 미래에 축복을 내리는 의미로 다가와 모처럼 마당의 개방감과 전통미가 느껴져 멋진 장면으로 기억에 남았다.

  2. 승무

  고깔에 고개를 묻고 무표정한 얼굴로 휘휘 팔을 뻗어 소매가 그리는 그림을 보았다. 허공에 휘적휘적 한삼 자락이 그리는 그림은 마치 하얀 물감 같아서 허공엔 흔적이 남지 않았다. 세상은 有도 無도 아니라는 듯 ‘색즉시공공즉시색’ 즉,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뜻하는 것 같았다. 


  동여맨 치마 속 수줍은 버선코 / 코끝이 땅을 밀어 어깨를 올리면 / 등에 메인 나비도 훠이 오른다. // 장단이 굿거리로 바뀌고 / 덩덩 덩 따 쿵 하고 들썩이면 / 고깔 속 얼굴이 슬쩍 미소 짓는다 //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 걸음 / 허공에 뿌려지는 한삼 자락 / 흰 물감 뿌리듯 흔적은 하나도 없다 //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니 /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하는구나 /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 -승무 / 안광덕 지음-    

 



  법열곡(法悅曲)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이애주 선생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1987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체제가 시작되는 역사적 전환기였다. 젊은이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얻고자 했던 민주화 쟁취의 물결에는 이애주 선생의 바람맞이 춤과 한판 춤, 썽풀이 춤이 있었다.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서 비롯된 씨춤, 물춤, 불춤, 꽃춤은 물고문, 불고문, 성고문의 고통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이로써 춤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칼과 총알 같은 무기가 되었다. 


 그렇게 이애주 선생의 몸짓과 춤사위는 어떤 주장과 구호보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어쩌면 그 ‘거리 춤’은 이애주 선생만의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가다듬어온 민중 예술운동 전체의 것이었고 민주화를 염원하며 거리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그분을 추모하며 남산 국악당에 올려진 ‘법열곡(法悅曲)’에서 ‘법열’은 불법(佛法)을 듣거나 생각하거나 행하므로 생겨나는 환희라고 하는데, 종교적 색채가 너무 많아 종교행사에 온 듯 당황스러웠지만, 불가(佛家)에서 스님들이 췄던 춤에서 민중이 추는 춤의 원형이 들어 있음을 발견하고 우리 춤의 정수로 받아들인 이상 그 승무의 형식은 불법(佛法)으로 그치지 않고 ‘그 어떤 진리를 깨달았을 때 생기는 끝없는 희열’로 이해하며 작품을 끝까지 감상했다.



  

  그날 공연장에서 본 모든 의식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국가 무형유산’이자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영산재(靈山齋)’였다. 영산재는 49(사람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에 지내는 제사)의 한 형태로영혼이 불교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극락왕생하게 하는 의식이다석가가 영취산에서 행한 설법회상인 영산회상을 오늘날에 재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영산재는 불교 천도의례 중 대표적인 제사로 영산작법이라고도 한다기원은 분명하지 않으나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 의하면 조선 전기에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영산재는 제단이 만들어지는 곳을 상징화하기 위해 야외에 영산회상도를 내다 거는 것으로 시작한다신앙의 대상을 절 밖에서 모셔오는 행렬의식을 하는데이때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해금장구거문고 등의 각종 악기가 연주되고바라춤·나비춤·법고춤 등을 춘다신앙의 대상을 옮긴 후에는 여러 가지 예를 갖추어 소망을 기원하며 영혼에게 제사를 지낸다마지막으로 신앙의 대상을 돌려보내는 봉송의례를 하는데 제단이 세워진 곳에서 모든 대중이 열을 지어 돌면서 독경 등을 행한다예전에는 사흘 낮과 밤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근래에는 규모가 축소되어 하루동안 이루어진다. / 국가유산청 국가 유산 포털에서 가져옴


  현재 영산재는 태고종 봉원사(奉元寺)의 ‘영산재보존회’ 만이 그 명맥을 잇고 있는데, 다른 절집 행사 때  짤막한 바라춤과 승무를 본 적 있지만, 두 시간에 걸쳐 전편을 모두 보여준 영산재는 처음 보았다. 


  공연내용에 영산재가 있다는 것을 전혀 상상하지 않았다는 것은, 보통의 추모 공연이 그러했듯 이애주 선생을 기억하며 민주화 운동에서 앞줄에 계셨던 선생의 약력과 살아오신 과정을 이야기한 뒤 제사 형식과 추모형식을 갖춰 이애주 문화재단의 제자와 후학들이 다양한 레퍼토리로 승무를 재현 하나보다 하고 예약을 했던 것이 나의 속마음이었다는 것인데, 민주화 운동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모든 형식을 영산재에 맞춰 승무는 맨 뒤에서 대미를 장식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런 경우를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는다’라고 하는 것처럼 봉원사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었던 영산재여서 매우 귀한 공연을 본 셈이 되었다. 특히 바라춤, 나비춤, 법고춤은 절집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춤인데, 


  먼저 바라춤은 천수바라라 해서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을 뜻하는 바라가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들 독경에 맞춰 세상의 모든 중생과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듯이 무릎 아래 오금의 수직운동을 손목으로 올려 부드러운 스냅으로 바라가 휘휘 돌아가는 모습이 일품이었으며 태평소 선율에 무한 반복되는 삼현육각의 리듬은 미치지 않으면 미칠 때 가지라는 자세로 연주하는 듯하여 무속과 비슷하단 생각을 하였다.


  두 번째로 나비춤은 이제 도량이 청정하여 더러운 것이 없으니 영혼들에 나비처럼 이 자리로 내려앉으시라 권하며 고깔 쓴 두 스님과 네 선녀가 손에 연꽃을 들고 나비를 안내했는데, 흰색 장삼 위에 걸친 붉은 가사와 뒤로 늘어트린 청색 깃과 황색 고깔이 동쪽의 파랑, 남쪽의 빨강, 중앙의 노랑, 서쪽의 하양이 무대의 검은 어둠과 더해져 북쪽의 검정으로 정확하게 오방색을 보여주고 있어 세상 모든 것이 청정해지길 바라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로 법고춤은 부처님의 법열을 울려 세간 중생으로 하여 깨달음의 성취를 목적한다고 하던데, 요동치는 법고와 북을 치고 있는 스님 등 뒤에서 내려 비취는 핀 조명이 북 속에 스님의 그림자를 만들어 마치 보름달의 전설이 있는데, 법고 소리로 땅 위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내러티브를 만드는 듯했다. 


  승무와 바라춤 그리고 선녀들의 헌화가 끝나고 스님의 염불로 넘어간 이후는 모든 출연자가 바닥에 엎드려 서서히 잠들었고, 그러다 다시 깨어나는 출연자들은 이전에 없던 생명인 듯, 어떤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고 피나 바우쉬의 즉흥 춤처럼 칼 각의 군무가 아닌 각자의 호흡으로 무아의 춤을 스스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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