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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러나 Dec 24. 2023

20만원 주고 내 이름을 지으러 갔다.

당신의 이름엔 무슨 뜻이 있나요?

'쿵'


내 나이 즈음 사내는 병원 문에 이마를 찧었다. 피가 줄줄 흐른 채로 둘째아이를 안았다. 사내이기를 바랬건만 여자아이였다. 이름엔 뜻이 없었다. 그저 부르기에 예쁜 이름을 붙였다. 그땐 한글이름이 유행이었다는 핑계를 대며.




자아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교복에 명찰을 달고 다녔는데, 남들과 달리 한글이 적혀있어서 창피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나 혼자 벌거벗은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이름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 그런지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그렇게 남의 이름 같아서 낯설었다.

어느 날은 내 이름은 왜 한자가 없는지, 왜 뜻이 없는지 부모님에게 따져 물었다. 그렇게 싫으면 이름을 다시 지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혼자 철학관에 찾아갔다. 20만원을 드리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했다. 겨우 교복입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완벽한 실패였다. 예쁘지도 않았고 뜻도 별로였고. 돈만 버렸다. 그 돈이면 문제집을 몇권 더 샀을텐데. 그래서 결국 지금의 이름으로 계속 살게되었다.


그러다 이십대가 되어 단단한 정체성을 조금 갖게되었을 때, 스스로 이름의 뜻을 만들어 붙여주었다. 작은 것에도 기뻐할 줄 아는 사람으로.


십년이 지나 서른이 되었을 때, 십년을 알고지낸 소중한 친구는 내 이름에 뜻을 붙였다. 밝게 빛나는 기쁨이라고.


그리고 여기 제주에서, 어제 만난 leo와 vu는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입꼬리가 올라간다며, 미소짓게 만드는 이름이라고 했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ㅗ‘에서 ’ㅣ‘로 전환되는 한국어 발음이 그렇게 느껴지나보다.


고등학생 때 이름을 찾아 철학관에 갔던 어린 나는 이제는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사람이었다가, 기쁨으로 밝게하는 사람이며 이름만 불러도 누군가를 웃게하는 사람이 되었다.


돌아보면, 애초에 어떤 이름인지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 같다. 이름에 어떤 의미를 붙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이름을 부르는지가 더 중요하다.


지금은, 내 이름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리고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을 웃게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이 미소짓길

더 많은 사람이 이름을 알길

더 많은 사람이 이름을 부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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