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러나 Feb 25. 2024

사업을 못하는 성향은 따로 있을까?

0 to 1 (제로투원)이 안 되는 이유

딸아, 너는 사업하면 안 된다.

살다가 때때로 밸런스게임 같은 게 주어진다. 부모에게 사랑받기 VS 부모에게 인정받기. 나는 늘 사랑받는 쪽을 택했다. 사업을 이어받지 않는 이유도 그렇다. 부모에게 평가받는 딸이 아니라 사랑만 받는 딸로 살고 싶어서.


어느 날, 인정받는 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을 때 부모의 사업 중 일부분을 맡아 키워보면 안 되냐고 슬쩍 물었던 적이 있다. 수많은 자기 검열을 거쳐 겨우 그 망측한 말을 입에 올렸을 때 돌아온 말은,


'너 이런 일도 할 수 있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못하잖아. 그래서 네가 사업을 못하는 거야. 사업을 하기에는 너는 융통성이 없어.'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밥만 우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융통성이 없고 사업을 잘할 성격이 아니다. 사업을 잘할 성향은 정해져 있는 걸까? 나는 이런 운명인 채로 태어난 걸까?


그날의 대화의 종지부는 엉뚱한 데서 찍혔다.

'잘난 딸이 되기보다는 좋은 남편 만나 고생 없이 편하게 살길 바란다, 딸아.'




인정에서 벗어난 둘째 딸의 이야기

사업가 아빠를 똑 빼닮은 큰딸은 스타트업 이사가 됐다. 첫째와 완전히 반대성향인 둘째는 인사담당자가 됐다. 인사담당자가 둘째의 천성에는 잘 맞았지만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생각을 감출 길을 몰라 직장을 떠나 떠돌이가 됐다. "웅덩이가 아니라 바다가 되고 싶어"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그런데 그 생각은 오만이었다. 직장은 전쟁터, 직장밖은 지옥이라는데, 생지옥을 겪기도 전에 둘째는 고꾸라졌다. 회사 밖을 나와 세상에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수많은 물음표만 달릴 뿐, 세상에 물음표를 던질 과감함도 용기도 부족했다. 거기에 그의 부모의 말에 따르면 고집과 융통성 부족까지. 이 정도면 안될 각을 재고 직장에 다시 들어가는 게 맞다.





돈욕심이 나서 사업을 하려고 했나?


혹시 퇴사할 적엔 갑자기 돈욕심이 났던 걸까? 무슨 이유로 세상에 맨몸으로 달려드려 했던 걸까. 자신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잘 모르면서 회사를 떠나온 것은 무식하게 용감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일이다. 어떻게든 해내겠지 생각했던 것은 큰 오산이다.


웅덩이가 바다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돈이 아니었다.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시험해보고 싶었고 세상에 나타내 보이고 싶은 나만의 무늬가 있어서였다. 나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나의 경험과 고유한 성향, 배경을 바탕으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걸 널리 퍼뜨리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으니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사업을 못할 거라는 생각

신중하고 원칙을 중요시 여기는 둘째 딸은 벽을 만나면 자주 좌절하며 오던 길을 돌아갔다. 그런데 어느 날 담을 뛰어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내면의 한계를 뛰어넘어보지 않은 자는, 고객의 마음에 뛰어들어갈 수도 없다.  


어쩌면 사업을 못하는 건 성향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보지 않은 자의 구차한 변명이 아닐까?


후계자가 되지 못한 딸은 사업은 이어받지 못하겠지만 그 언젠가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 끝없는 자기 검열을 그만두는 날에, 자신에게 확신을 갖게 되는 그날에, 자신만의 메시지를 가지고 창업형 인간으로 성장해 가는 날에, 평생 한 번은 인정받는 딸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제주에 있는 '9와 4분의 3 승강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