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관계는 결국 끝이 있는 걸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손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다.
나에게 어려운 관계가 있으면 무작정 연락을 회피하고, 그러다 보면 안 보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손절’ 이였다.
누가 어떤 때에 손절했냐고 누군가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할 순 없다. 하지만 내가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가 오면 도망쳤다. 좋은 기억만 있을 때 관계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대학생 때 같이 살던 친구였다. 나는 스스로 구겨져있다 여겼기 때문에 구김살 없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그 친구가 그랬다. 우리가 있던 동아리의 모든 친구들이 그 아이를 좋아했다. 걘 적이 없었다. 졸업 후에는 일 년을 같이 살았다. 같이 살면서 코로나가 왔다. 붙어있을 시간이 더 많았다. 나는 그 친구와 살면서 처음으로 ‘집에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좋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가족을 만드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취업 준비생이었고 그 친구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지 못했다. 그래서 종종 배가 고팠다. 하지만 마음이 고픈날은 없었다. 내가 살면서 울었던 날 중, 유일하게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울었던 날들이었기 때문에.
코로나가 시작되고 6개월 정도 지나서 나는 취직을 했다. 그 친구는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 친구의 취직 준비 기간이 길어졌다. 많이 지쳐 보였다. 나에게 전화를 먼저 걸어준 날도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절대 먼저 연락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내가 먼저 연락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연락을 받았을 때 “얼마나 힘들면 먼저 연락을 다 할까?” 싶었다. 나도 학과에서 취준을 꽤 길게 한 편에 속했다. 그 기간은 나를 갉아먹었고 나는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내 마음에 수많은 그늘이 생긴 기간이었다. 나는 그 그늘을 오랫동안 미워했다.
하지만 그 친구의 연락을 받고는 그늘이 있는 내가 처음으로 좋았다. 내 그늘에서 그 친구가 마음껏 쉬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는 오랜 취준을 견뎌 내가 다니던 회사로 입사했다.
분야가 달라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친구는 다시 예전처럼 바빠졌다. 그리고 지독하게 내 카톡을 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한 번도 문제 삼아본 적 없다. 오히려 상관없다 여기려고 애썼다. 입사를 하니 그 친구는 바빠졌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모임들, 새로운 연인, 새로운 일들. 내가 낄 자리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친구가 먼저 연락해온 날이었다. 한 달 후의 약속을 잡는 게 싫었다. 사실 그 친구가 한 것은 거절이 아니라 다음에 보자는 제안이었는데. 나는 바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늘 줄을 서있다 느껴졌다. 괜히 내가 초라하게 느껴져 심술이 났다.
나는 참고 참다 마음이 너무 고파 누군가 간절하게 필요할 때 무겁게 전화기를 들았다. 전화를 받은 친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친구가 나에게 상처 줄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계속 상처받았다. 기다리면 언젠가는 그 친구에게 나를 볼 시간이 생길 줄 알았다. 그전에 내 인내심이 동나버렸다.
우리는 서로 생각하는 만남의 무게가 너무 달랐다. 만남을 가볍게 여겨도 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그때의 난 몰랐다. 나 혼자 한껏 만남을 무겁게 만들었으면서, 그 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나 혼자 서운함을 쌓아갔다. 서운함이 쌓여서 감히 그 얘를 생각하는 것 마저 힘들어졌다. 어느 순간 그 얘는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그냥 안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담을 하며 내가 어떤 관계를 친밀하게 느끼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고, 일상을 자주 공유하는 관계를 친구라고 느꼈다. 사람 성향이라는 게 모든 것이 꼭 맞을 수는 없다고 했다. 서로 말해가며 맞춰가야 하는 거라고. 하지만 나는 원하는 것을 몰랐고, 말할 줄 몰랐으며 제멋대로 관계를 끝냈다. 상담 선생님과 그 친구에게 뭐라고 말할지 고민했다. 선생님은 서로에게 생긴 거리감에 대해 이야기하면 될 것 같다고 하셨다. 그 친구는 내 마음을 모를 거라고. 사람마음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거라고. 나의 마음을 말하는 게 서로에게 좋을 거라고 했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며 버스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인내심이 동날 때까지 그 얘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은 걔가 밉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 가지였다. 그래수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 얘는 너무 바빴고, 나는 기다리지 못했다. 우리가 친구일까 아닐까. 친구라는 말에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눌러 담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것은 나에게 엄청 해로운 시간들이 되었다.
해가 바뀌고 내 생일이 되고, 같은 건물에서 일하게 되었다. 직접 만나서 말할 자신은 없었다. 연인도 아닌데 관계의 마침표를 만나서 찍는다는 게. 참 우스웠다.
전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얘의 침묵이 너무 무서웠다. 결국 카톡을 보냈다.
이제 이걸 읽으면 마침표를 찍는 걸까? 읽었으면 좋겠다가도 평소처럼 안 읽기를 바라기도 했다.
괜히 말했나 싶다가도, 어차피 나만 쥐고 있는 관계인데 뭐가 문제겠어 싶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일상은 계속되었다. 너무 울어서 밤에는 잠을 못 자고, 회사에서는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동료들은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고, 그 주 에는 거의 오후 휴가를 쓰거나 재택근무를 했다. 연인과의 이별도 아닌데 이렇게 울게 되는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그 생각을 했던 주에는 아침에도, 저녁에도 눈물을 흘리면서 살았다.
왜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독하게 다정한 말들로 가득 찬 답장을 받았다. 오랫동안 고민한 것이 느껴졌다. 답장을 받고도 한참을 울었다. 너도 슬프겠다. 그렇지만 너는 그 많은 사람들과 사랑들 사이에 안겨 울겠지. 난 네가 없어서 혼자서 울었는데.
그 친구는 이유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실은 맘으로는 그 친구의 한마디 한마디에 토를 달고 싶었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내가 도망가려고 하니까 그제야 나를 달래는 것 같이 느껴졌거든. 나의 못난 마음으로 너를 못 보게 된 것 같아 또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걔는 내가 소중하다고 했다.
거짓말. 나도 내가 소중하지 않은데, 어떻게 네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겠어. 소중하다면 어떻게 나한테 연락 한번 없었어. 내 인내심이 바닥나는 동안 왜 내가 소중하다고 알려주지 않았어.
원망하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한 것은 그 친구가 아니라 나라는 것을.
고맙고 미안하다고 했다. 사실은 나도 그래.
이런 관계의 마침표도 있더라. 명확하게 잘라내야 내가 살 수 있는 관계도 있더라. 참 슬펐다.
오랫동안 앓던 이를 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 아팠지만 몇 주가 지나니 한편으로는 개운 하기도 했다.
네 인생이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가끔은 내 인생도 그걸 닮으려 할 때가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