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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Oct 06. 2023

인형뽑기 달인의 자신감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

  몇 년 전 한창 인형뽑기가 유행인 적이 있었다. 대단한 열풍이라 소소하게는 가게 앞 인도에 인형뽑기 기계를 한두 대씩 두었고, 전문적인 인형뽑기 가게에는 열대여섯 대씩 뽑기 기계를 가져다 두고 영업을 하였다. 본래 그런 뽑기 재주도 없고, 운도 없고, 인형이 필요한 나이는 아니기에 애초에 천 원을 날리는 일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신랑이 회식 후 꼭 인형을 한 개씩 들고 들어왔다. 이거 뽑는데 얼마 쓴 거냐 배보다 배꼽이 크다 잔소리를 했지만 뽑기 요령을 터득한 신랑은 뽑는 재미에 빠져 쓸데없는 인형을 꾸준히 들고 퇴근을 했다. 


  대책 없이 인형들이 집에 한가득 쌓이고 있을 즈음, 때마침 열리는 아파트 아나바다 장터에서 인형들을 펼쳐놓고 개당 천 원에 팔기 시작했다. 장터에 나온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인형을 물색하고는 엄마에게 아빠에게 부리나케 뛰어가 물주를 끌고 돌아왔다. 인형뽑기에 돈과 시간을 얼마나 투자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이렇게 잘 팔려주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한 동안 인형뽑기에 열을 올리던 신랑은 어느덧 인형뽑기 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한자리에서 몇천 원을 고스란히 날리지 않고도 가게를 한 바퀴를 쭉 둘러보고는 '이건 뽑히겠다. 저건 안 되겠다.' 판단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같이 외출을 할 때면 "인형 뽑아줄까?" 하며 멋진 재주를 뽐내고, 나는 큰 전리품을 얻은 것 마냥 신랑이 뽑아 준 인형을 팔에 끼고 당당히 거리를 걷곤 했다.


  내 생일이라 외식을 하러 같이 번잡한 시내를 걷다 보니, 신랑은 어느새 참새 방앗간 들르듯 인형뽑기 기계 앞에 서있다. 가게 앞 데크에는 인형뽑기 기계가 세대 있었고 아이 둘의 응원을 받으며 아이 엄마가 인형을 뽑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뽑기를 시도한 것 같았고, 아이들은 엄마가 꼭 인형을 뽑기를 고대하며 한껏 기대에 부푼 눈을 초롱거리고 있었다. 그 옆에서 신랑도 인형뽑기를 시도했고 손쉽게 인형 하나를 즉석 생일선물오 내 품에 안겨줬다. 옆에 있던 아이들은 역시나 인형을 손에 넣지 못했다. 너무나 실망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한 번만 더 하자고 엄마를 졸랐고 엄마는 이미 많이 하지 않았냐며 아이들을 타이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신랑이 내 품에 있던 인형을 확 빼앗더니 아이들에게 전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나는 너무 당황해서 멍하니 신랑을 쳐다봤고 정신을 차려보니, 깜짝 선물에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고 아이 엄마는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네고 있다.  


  황당하게도 신랑이 인형을 갑자기 채어 간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바로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본래 내 것이던 것을 빼앗긴 기분이 들었다. 신랑의 행동을 보고서야 뒤늦게 "아!" 내가 생각이 짧았구나 싶었고, 신랑은 그런 나에게 "또 뽑아줄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정말 식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약속을 지켰다. 그날 신랑의 주변 사람을 향한 배려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단 다짐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랑이 뽑아 준 인형을 지금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두고 있다.


  인형뽑기 천덕꾸러기 같은 재주가 누군가에게 큰 기쁨을 줄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 배려는 '나는 또 뽑을 수 있어!'라고 하는 자신감 가득한 마음의 여유에서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또 뽑아도 혼나지 않을 거야!'라는 열린 기회에 대한 확신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우연히 한 번 뽑았는데 그걸 생판 모르는 이에게 줄 수 있을까? 물론 성인군자 같은 분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수양이 부족한 나는 그 경지를 이해하긴 쉽지 않을 듯하다. 오히려 마음수양보다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마음의 여유는 내면의 자신감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내면의 확실한 자신감과 외부의 풍족한 기회를 인지할 수 있을 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내가 아닌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외부의 기회도 닫혀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수많은 기회가 잘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에게 자신감을 충전해 주는 능력이 무엇이 있을지, 남에게 베풀 수 있을 만큼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찾아보고 키워본다면 아무리 소소한 재주라도 기회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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