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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Oct 05. 2023

01. 취업면접으로 1박2일 도쿄 공짜여행?

도쿄신입사원 01

지금부터 20대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도쿄의 토종일본기업에 취직하여 신입사원 시절을 보내고, 컨설팅펌을 거쳐 한국으로 다시 귀국하기 까지의 5년 반동안의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 나의 5년 반의 미천한 경험이 일본취업을 생각하려는 취준생 분들과 또 일본의 회사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유난히 지루하고 노곤한 가을날의 점심이었다. 대학교 캠퍼스는 이제 겨울을 맞이하려 하는지 공기는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었으나, 나는 따분함에 졸음과 겨우겨우 사투를 하고 있었다. 졸업학기에 사회인의 문턱에 서있는 지금, 이미 IT대기업에 내정을 받아둔 나의 갈 곳은 정해져 있어 승리감에 젖어있었고, 그만큼 나태하고 게으름이 몰려오는 나날이었다. 수업 끝나면 친구들이랑 술이나 적시러 가야지.


지금 듣고 있는 수업은 산학연계 프로젝트라는 수업이다. 학부생들이 조를 짜서 실제 회사들의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실무를 배워보게 하는 수업이다. 나는 이미 나와 같이 취업에 성공한 친한 선배, 그리고 동기랑 이렇게 조를 맺었는데, 다들 취업시장의 승리자 집단이었기에 그다지 큰 의욕도 없었다. 우리 조는 비디오 플레이어 제작이라는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는데, 사실 제일 흥미 없고 어려워 보이는 프로젝트였지만 우리한텐 그런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 회사가 학교랑 가까워서 가끔 회의하러 가기 편하겠다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었다. 우리가 참여한 회사의 실무자들은 나태하고 건방진 우리들을 보고, 심각하게 교수님에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지만, 교수님의 책망에도 우리는 1도 타격이 없었다. 이미 취업시장의 승리자였기 때문에.


오늘은 프로젝트 수업의 중간발표일이다. 중간발표일에는 모든 수업 학생들이 모여야 한다. 당연히 나는 다른 조 발표에는 아무 관심 없다. 수업이 시작되자 교수님께서 강의실 앞으로 나온다.


“오늘은 한 일본 IT기업에서 설명회를 오셨습니다. 우리나라의 삼성 SDS 같은 회사죠. 최근에 일본에서 유능한 한국 엔지니어에게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직접 취업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일본 IT업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들어보시죠. “


당연히 난 관심이 없다. 일본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게 전부고, 일본이란 나라에 크게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교수님이 소개를 마치자 곧이어 일본 채용담당자가 강의실 앞으로 나왔다. 히라노 나나라는 이름의 젊은 인사팀 여사원이었다. 우리 또래랑 비슷한 나이로도 보였고, 일본여성 특유의 귀여운 이미지의 직원이었다. 당연히 나나 씨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건 아니니, 한국인 엔지니어이자 통역사가 옆에 붙어 있었다.


뭐 나나 씨가 일본어로 설명하면 한번 더 한국어 통역이 된다는 것만 달랐지 어느 기업설명회랑 똑같은 평범한 내용이었다. 우리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업을 한다는 틀에 박힌 내용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잊혔지만 나한테 딱 하나 구미를 당기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중간면접에 모두 합격하시면 도쿄에서 최종면접이 진행됩니다. 물론 1박 2일 일정으로 비행기표와 숙박이 제공됩니다. “


응? 공짜로 도쿄를 가볼 수 있다고?

졸업학기고 시간도 많은데 도쿄나 다녀와볼까? 뭐 떨어질 수도 있지만 한번 해볼 만하잖아?


그렇게 이 날의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 하나로 5년 반 동안의 우여곡절 많았던 나의 도쿄에서의 직장인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날의 저 깃털보다 가볍고 오만방자한 선택이 내 인생의 20대의 절반을 외국에서 가득 채우고, 수많은 사건을 남길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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