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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May 01. 2024

첫 직장으로 컨설턴트는 좋은 선택인 것 같다

IT 스타트업 팀장 일을 하면서 첫 직장으로 들어오는 신입이나 경력들을 많이 보는데, 개발자 출신이 많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본인의 생각에 대해 근거 있고 조리 있게 대답하는 경우를 잘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해 "다른 종류의 GPU 벤치마크를 하는데 왜 이렇게 벤치마크 모델과 기준을 선정한 건가요?" 라거나 "OO님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안은 뭐예요?"라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은 가지고 있지만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하다.


그래서 나는 본인이 누가 시키는 대로 스펙을 다 짜주는 대로 코딩만 하는 기계적인 개발자가 될 게 아니라면, 본인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잘 말할 수 있는 '논리력'을 키우는 훈련을 사회 초년생 때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리력'이란 게 거창하게 무슨 논문이나 철학 책에서 나올법한 것이 아니고 단순하게 당신이 설득시켜야 하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 정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신이 만약 사회 초년생이라면 당신의 직속 상사를 설득시킬 수 있는 정도의 논리력만 갖춘다면 충분하다고 본다. 물론 그 직속 상사가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를 설득하기 매우 힘들겠지만 정말 복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라. 계속 당신을 거칠게 훈련시켜 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사회 초년생 때 컨설턴트를 해보는 걸 꽤나 괜찮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녔던 컨설팅펌에는 마치 부하가 가져온 자료에 대해서는 월리를 찾아라에서 월리를 찾아야만 하는 상사들의 강박감이 있는 것 같았다. 내 자료가 완벽하지도 않았지만 무언가 논리적인 허점이 보이는 순간 잔잔한 미소를 띠우 우는데 그때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한지 모른다. 나 역시도 일본 컨설팅펌에 2년 가까이 있었는데, 정말 2년 내내 아래와 같은 잔소리를 끊임없이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근거가 뭔데?"

"이게 너 생각이야?"

"그래서 근거가 뭐냐고!!!"


짧은 3장짜리 PPT를 써도 리뷰를 받는데 2~3시간은 족히 걸리고 결국 덕지덕지 상사의 코멘트로 PPT는 걸레짝이 되어 돌아온다. 하지만 이 짓도 한 3개월만 해보면서 당하다 보면 익숙해지게 되고, 고생한 만큼 정말 내 문장들이나 주장에 대한 근거들도 한껏 좋아지게 된다. 또한 컨설턴트의 좋은 점은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고 나 역시도 다양한 프로젝트에 속할 기회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강박쟁이 상사들의 코멘트를 받아볼 수 있다. 즉, 일반 대기업이라면 내 직속상사 라인들에게만 지적을 받다 보니 그들의 입맛에 맞게 편향적인 코멘트만 받게 되는 단점이 있을 수 있는데 컨설팅펌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그런 확률은 극히 낮다. 


하지만 컨설팅펌에 가면 정말 힘들다.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정말 힘든 프로젝트에서는 새벽 1시까지 살인적인 리뷰를 마치고, 만신창이가 된 나와 내 PPT가 불쌍했는지, 리뷰를 같이 해주던 프로젝트 리더들이 술 한잔 하러 가자고 하더라. 그리고 그렇게 술을 마시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자료를 다시 고쳐서 9시에 고객사 앞에서 발표했었다. 


본인의 문장력과 논리력은 어떤 책이나 강의로는 절대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엄청난 채찍질을 견딜 자신만 있다면 나는 컨설턴트를 사회 초년생에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잘 버틴다면 힘든 만큼 확실히 본인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있다. 그 힘들었던 경험이 당신이 5년 차가 넘어가 대리급이 되었을 때, 다른 동료들과는 다른 수준의 업무 실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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