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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Oct 05. 2023

02. 일본어를 하나도 못하는데 지원 가능하다고요?

도쿄신입사원 02

그렇게 나는 도쿄에 1박 2일 공짜여행을 가보겠다는 걸 졸업학기의 하나의 목표로 삼았다. 어차피 취업도 정해졌겠다, 졸업학기에 듣는 수업들도 학점들도 대부분 확보된 상태라 더 이상 망설 일건 없었다. 2013년 당시 분위기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사능이 두려워 일본여행을 꺼려하는 분위기이긴 했지만, 군대 가기 전에 갔던 오사카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지라 난 크게 거리낌이 없었다. 뭐 한두 달 있는 것도 아니고 1박이지 않은가. 게다가 공짜고.


회사설명회가 모두 끝났고 혹시나 지원을 희망하거나 관심이 있는 학생은 추가로 면담이 가능하니, 밖에서 대기할 테니 교실 밖의 테이블들이 있는 로비로 와달라는 말을 끝으로 일본인 인사팀과 통역을 맡아준 엔지니어들은 교실에서 퇴장했다. 수업이 끝나자 혼자 가기는 뭔가 민망해서 비슷한 관심을 보이던 선배 한 명과 함께 면담장소로 갔다.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서너 명의 채용 담당자들은 눈이 반짝거리며 우릴 미어캣처럼 바라보고 있다. 그들도 '이 한국 출장이 헛되지 않게 한 명이라도 여기에 와라'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나는 선배와 함께 채용 상담 테이블에 앉았다.


상담 테이블에는 아까 설명회를 진행하던 나나씨와 다른 일본인 인사팀 직원, 그리고 일본취업을 연계하는 한국인 리쿠르터, 그리고 통역을 맡아준 한국인 직원이 앉아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나와 선배가 앉았다. 나나 씨는 우리를 보며 반갑게 웃으며 와줘서 고맙다고 어눌한 한국말로 ‘카무사하무니다’ 라고 했다. 제대로 된 대화는 아니었지만 일본인과 처음으로 말을 주고받은 순간이었다.

상담에서는 시간관계상 설명회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지금이야 나도 회사에 다닐 때 자사 취업설명회를 입사선배로서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대부분이 '우리 회사가 어떤 일을 한다' 보다는 '복지', 그리고 '이런 재밌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라는 것들이다. 음... 듣다 보니 도쿄 1박 2일 여행도 그렇지만 생각보다 이 일본 기업과, 또 외국에서 일해볼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단은 통역을 해주시는 분이 이미 해당 회사를 다니고 있는 한국인 엔지니어라서 그런지 더 안심이 간 부분이기도 했다. 일본인들만 있었다면 이 말이 진짜인지, 실제로 입사했는데 그냥 외노자 취급을 받는 건 아닌지 좀 불안하긴 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 한국인 엔지니어 선배는 다행히 나와 비슷하게 외국인 엔지니어 전형로 채용된 사람이고, ‘자기도 일본어를 처음에 잘 못했다. 하지만 와서 금방 업무 하는데 문제없이 배울 수 있다 ‘ 등등 대부분의 불안감을 해소해 주더라. (나중에 알았지만 이 선배는 입사당시에는 이미 JLPT 1급에 준하는 수준으로 일본어를 잘하는 상태였고, 나는 단 한마디도 못하는 수준이었다는 차이는 있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워라밸이 매우 좋기 때문에 회사일도 일이지만 회사가 끝나고 벌어지는 일본의 무궁무진한 재미와 즐거움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에 귀가 혹하기 시작했다. 이 선배가 일본문화에 정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 퇴근 후에 벌어지는 다양한 일본의 놀거리, 볼거리 그리고 문화에 대해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불안감은 바로 이것이었다. 바로 질문을 했다.

"근데 정말로 일본어를 못해도 지원이 가능하나요?"


한국인 선배가 입을 연다.

"그럼요! 입사의 모든 과정은 통역사를 통해 한국어로 면접이 진행되고요. 도쿄에서 있을 마지막 면접도 똑같이 한국어로 진행합니다. 그리고 최종합격을 하게 되면 한국에서 3개월, 일본에서 3개월 정도 일본어 연수기간을 갖게 되고요."


"그래도 일본에서 일하려면 상당 수준의 일본어 실력이 필요할 텐데, 전 일본어를 한마디도 못해요."


"입사하기 전까지 JLPT N2 수준으로만 따면 됩니다. 그리고 지원자 분 같은 한국인 엔지니어가 이미 몇 명 있는데 한국어랑 일본어랑 비슷해서 그런지 금방 따라잡더라고요."


실로 어마어마한 혜택이다. 아니, 만약 입사를 한다고 하면 지금까지 내가 걸으려고 했던 인생 계획은 180도로 바뀌게 된다. 음 180도까지는 아니더라도 150도 정도는 바뀌는 거다. 내 계획에 일본이란 나라는 없었고 더구나 일본어는 단 한마디도 못한다. 제2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웠다지만 어렴풋이 히라가나만 기억나는 수준이고, 회화라고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감사합니다)' 정도 경우 알뿐이다.


음... 만약에 내가 입사를 선택한다고 하면, 일본어까지 공짜로 배울 수 있는 거겠는데...? 아니야 정신 차리자. 넌 한국 대기업에 가야 해. 그것도 쉽게 얻어낸 것도 아니잖아. 에이 그래도 뭔가 아쉬우니 도쿄 1박 2일 여행 공짜로 가는 셈 치고 한번 도전해 보자.


"그럼 저는 한번 지원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2번의 면접이 치렀다. 일본 본사 인사팀이 한국에 와서 면접을 진행하는 거고, 인사팀도 한국에 무기한 체류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면접일정이 타이트했다. 2번의 면접이 이틀 만에 치러졌다. 1차 면접은 기술면접으로 기본적인 기술역량을 보는 것이고, 2차 면접은 3차 도쿄면접에 올리기 위한 인사팀의 인성면접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차 면접도 기술면접이었지만 그냥 어떤 수업을 들었는지 어떤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 물어보는 수준이었고 거의 인성면접에 가까웠다. 각 면접이 통역까지 끼어서 그런지 거의 2시간 가까이를 봤었고, 계속 비슷한 질문들이 반복되어 왔던 것 같다.


면접을 보면서 느꼈던 거지만, 내가 S사 IT 대기업에서 봤던 면접 경험과는 매우 달랐다. 물론 일본기업 입장에서는 독특하게 한국인 엔지니어를 '일본어를 못하는 엔지니어를 뽑아서 일본어를 가르쳐서 쓰는 굉장히 예산을 많이 써가면서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모험적인 입사전형'이었기 때문에 내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준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내 '능력' 보다는 나라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귀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 마음속으로도 느껴졌다.

가령, '이 회사에 입사하면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건가요?', '동료와 갈등이 있으면 어떻게 풀어나갈 건가요?'라는 질문보다 '이 회사에 입사하면 많은 불안감을 느낄 텐데, 그럼 우리가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라든가, '평소에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하나요?'라는 식의 내가 정신과는 다녀본 적이 없었지만 심리 카운슬러 같은 느낌이었다랄까? 사회에 발을 내 닿는 불안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런 불안감들과 걱정거리들을 함께 이야기해서 도와주겠다는 것들, 그리고 또 질문들에서 느껴지는 '나에 대한 궁금함'이 인상적이었다.


2차 면접까지 마치고 나니 엄청난 피곤함이 몰려왔다. 어느덧 해는 저물어가고 있었고 무언가 '일본에서 일해봐도 나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내 인생 시나리오에 일본은 없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일본을 간다는 건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다. 2차 면접까지 마무리하고 역으로 향하는 사이에 대학동기들에게 술 한잔 하자는 연락이 왔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배고픔에 친구들이 있는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소주 한 병쯤 비워갈 때쯤 전화가 왔다. 회사의 취업을 중개하는 리쿠르터였다.


"박종찬 님, 2차 면접까지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도쿄 갈 준비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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