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IT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내가 담당하던 일본의 한 메이저 신문사 고객이 있었다. 그 신문사는 일본에서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곳이었고, 나는 그곳의 인터넷 신문 마케팅 팀과 함께 일했다. 내 역할은 데이터 분석가였고, 주로 고객 데이터 분석을 하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고객의 인터넷 신문은 일본 내 1위 구독 회원 수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다른 신문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SNS 및 정보 공유 앱이 증가함에 따라 고객은 구독 회원 수를 어떻게든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고객 마케팅 팀은 “구독자가 왜 구독을 해지하는가?”에 대해 대략적인 감은 가지고 있었지만, 데이터로 분석해 보고자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 회사에서는 두 명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한 명은 데이터 분석을 담당한 나였고, 다른 한 명은 고객사 데이터베이스에서 데이터를 추출해 주는 일본인 데이터 엔지니어였다. 데이터 분석을 위해 설정한 주제는 다음과 같았다.
어떤 구독자가 계속 구독할까? 그들의 행동 패턴은 무엇일까?
어떤 구독자가 구독을 취소할까? 그들의 행동 패턴은 무엇일까?
DM을 보내면 어떤 구독자가 반응할까? (DM: Direct Mail의 줄임말. 지금은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이나 당시 일본에서는 마케팅 목적으로 회원에게 보내는 메일을 주로 의미했다)
함께한 데이터 엔지니어는 쿼리를 다루는데 천재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원하는 데이터가 무엇이든 빠르게 뽑아 주었다. 덕분에 나는 많은 가설을 검증할 수 있었지만, 초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수많은 가설들이 다 어긋나면서 고객사와 우리 모두가 이 프로젝트가 쉽지 않음을 느꼈다. 구독 회원에게서 뚜렷한 패턴이 보이지 않았다. 신문을 구독하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이유가 있었고, 취소하는 이유도 제각각이었다. 시즌별, 고객 연령별, 대략적인 직업별 패턴을 살펴보았지만 뚜렷한 결과를 찾지 못했다. 프로젝트가 답보 상태에 있던 중, 나는 고객사에 한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너무 과거 데이터에 의존해서 뭔가를 찾으려 했던 건 아닐까요? 이 프로젝트는 마케팅을 위한 것이고, 결국 마케팅을 위한 어떤 액션을 취할 거잖아요. 그 액션들을 미리 회원들에게 실제로 테스트를 해보고, 어떤 반응이 오는지를 분석하는 건 어떨까요?”
제안을 한 후에 살짝 후회했다. 고객사는 보수적인 메이저 신문사였기에 구독자를 대상으로 A/B 테스트를 하겠다는 것은 그들에게 상당히 도전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마케팅 팀은 생각보다 진취적이었다. 마케팅 팀은 절박했고, 적극적으로 윗선에 보고하여 IT팀과 협의해 보겠다고 했다.
결국 마케팅 팀의 노력 끝에 내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과거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독 회원 이탈 방지를 위한 몇 가지 마케팅 액션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과거 몇 일 이상 접속하지 않은 회원에게 메일 보내기', '특정 연령 및 성별의 회원 로그인 시 특정 마케팅 배너 띄우기' 등의 아이디어가 도출되었고, 여러 아이디어를 추리고 정리하여 마지막에는 3가지 액션 아이템이 최종 선정되었다.
3가지 액션 아이템이 적용된 A/B 테스트는 실제 구독 회원을 대상으로 약 1개월간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3가지 액션 아이템 중 1가지는 확실한 효과를 보였고, 2가지는 아쉽지만 미미한 성과였다. 그러나 그 2가지에서도 일부 연령 및 성별의 회원에게는 효과가 있어서, 해당 회원들에게 지속적으로 마케팅을 하자고 결정했다.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그래도 예년에 비하여 꽤나 많은 구독 회원 이탈을 방지하는 결과도 있었다고 했다.
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는 종종 유의미한 결과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과거 데이터만을 바라보고 현재와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는 가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마케팅 관련 데이터 분석은 반드시 어떤 ‘액션’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취하고자 하는 액션이 정말 먹힐지 아닐지 실험해보면서 분석하는게 중요하다. 하지만 나도 고객사 마케팅 팀의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협력이 없었다면, 큰 성과 없이 과거만 분석하다가 프로젝트가 끝날 뻔했다. 결국 어떤 프로젝트든 고객사와 우리 모두의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