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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Apr 30. 2024

유기견을 분양받고 싶어하는 분들께

유기견을 분양받고 키우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부터 6번의 고민할 기회를 주겠다.


1. 당신은 유기견을 분양받는 걸 생각하고 있는가? 왜 펫샵에서 갓 태어난 어린 친구들이 아닌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유기견을 분양받으려 하는가? 아마 당신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 같은 경우에는 아내가 굉장히 개를 좋아했고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한마리를 데려와 키우기로 결정했다. 유기견을 키우기로 결정한 건 아내가 결혼 전에도 유기견 봉사를 다녔었었는데, 펫샵에 있는 예쁘고 작은 강아지보다는 상처받고 몸이 아픈 친구에게 다시 사랑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습관도 다 형성된 성견이고 어떤 나쁜 습관이 있을지도 모를 유기견을 선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면, 바로 유기견을 키우겠다는 마음을 접어라.  


2. 이제 당신은 유기견 보호소 인터넷 사이트에서 분양받을 강아지를 찾게 될 것이다. "곧 안락사를 당할 강아지에요" 라는 문구나 눈에 무언가 슬픔이 보이는 유기견들의 사진을 보면 당신의 마음의 장벽을 한껏 부숴버리고, 유기견을 키워야 겠다는 당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직 긴가민가한가? 그렇다면 깔끔하게 유기견을 키우겠다는 마음을 접어라.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 


3. 온갖 심적 갈등과 고민을 반복한 끝에 결국 당신은 분양받기를 결정했고 유기견 보호소에 가게 된다. 보호소에 들어가면 당신이 선택한 유기견 뿐만 아니라 다른 유기견들도 여럿 보일 것이며,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 것에 놀란 몇몇 개들이 짖기 시작한다. 잘 관리된 보호소라도 관리 인원은 부족할 수밖에 없어 개 대소변 냄새, 동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우리집이 이런 꼴이 될 것만 같다. 다시 공기청정기와 방향제 향으로 가득한 우리집으로 돌아가야 겠다면 당장 유기견 보호소 문을 박차고 나와라.


4. 당신이 선택한 유기견이 보인다. 사진과는 다르게 좀 더 볼품없어 보이고 건강도 안좋아 보이는 것 같다. 털도 좀 빠지는 종인 것 같기도 하고... 키우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가? 늦지 않았다. 정중하게 보호소 직원께 사과하고 "생각해보니 충동적인 마음에 온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나와라.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라.


5.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유기견을 데리고 나왔다. 데려오는 차 안에서 얼마나 털이 날리던지 결혼하고 뽑은지 얼마 되지도 않은 차에 개털이 날려 빡친다. 늦지 않았다. 바로 차를 돌려서 보호소로 돌아가라. 입양서약서에 사인까지 하고 데리고 나왔지만 그래도 괜찮다. 보호소 직원께 욕좀 먹더라도 그게 유기견을 위해서라도 현명한 판단이다.


6. 집에 도착했다. 이전에 반려견을 키우지 않았더라면 집에 애완용품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또 유기견들은 슬개골이 안좋은 경우가 많아서 내 사랑스러운 신혼집에 애견용 미끄럼방지 매트도 사야 할 것 같다. 아니 당장 저 미친듯이 흩날리는 개털이 문제다. 집에 막상 데려와보니 이제 현실이 느껴지는가? 음... 정말 많이 욕을 드시긴 하겠지만 그래도 1초라도 빨리 보호소로 돌려보내라. 가는 길에 20만원 현금도 좀 뽑아서 보호소에 후원이라도 해라. 


당신이 데려온 유기견은 그날 당신의 집에서 잠을 잘 못잘거다. 이리저리 집안을 돌아다니며 안절부절 할 것이고 그 끝에 지쳐서 눈치를 보며 구석에서 잠들 것이다. 당신도 그런 유기견이 신경쓰이지만 어떻게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아침이 되었다. 이제 당신이 데려온 유기견은 다음날부터 슬슬 당신의 집에 적응하기 시작할거고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새로운 주인' 이라는 의식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꼬리도 흔들면서 당신에게 다가오기 시작할거고 사료도 먹기 시작할 거다. 하지만 문제는 당신이다. 아직도 당신은 어제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가 남아있다. 


그런데 미안. 이젠 안된다.

이제 당신은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그 친구를 버려서는 안된다.


그 친구는 당신을 따라서 당신의 집이라는 낯선 곳에 왔다. 잠못드는 밤을 보내면서 그 어린 친구는 이전에 당신이 상상하지도 못할 상처를 잊고 이제 당신의 품에 다시 안기기로 결심을 했다. 그 긴 밤을 보내면서 이제 어린 친구는 그아팠던 과거들을 뒤로하고 당신과 가족에게 마음을 열기로 결심했다.


실제로 이제는 내게는 둘도 없는 믹스견 '모카'를 데려오면서 내가 했던 6번의 갈등이다. 나처럼 6번의 순간이 지나도 그 친구가 당신의 곁에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제 반려견을 사랑하는 마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내라. 그리고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당신이 데려온 반려견 친구를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면, 그 친구는 당신에게 천배 만배는 더 큰 행복을 당신에게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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