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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DOBOM Jul 05. 2024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이 있다면

그런 게 있다면

달팽이로 태어날래


날 때부터 집도 있고

차 없이 가고 싶은 곳 가는

달팽이로 태어날래

 

풀만 먹어도 배부르고

느릿느릿 움직여도 괜찮은

달팽이로 태어날래


짝이 없어도

혼자 있는게 정상인

달팽이로 태어날래


다음 생이 있다면

그런 게 정말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날지

고를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럴 수 있다면

다음 생이 있다면

고양이로 태어날래


날 때부터 시선강탈

누워만 있어도 사랑스러운

고양이로 태어날래


운동 안 해도 괜찮고

살찌고 털 빠져도 귀여운

고양이로 태어날래


폴짝 올라서

할짝 몸단장할 수 있는

고양이로 태어날래


다음 생이 있다면

정말 그런 게 있다면

무엇이 되어도 지금보다는 낫지 않을까?


실은 아무 거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아.

이 세상에 또 오고 싶진 않아.

한 번이면 됐는 걸.


다음 생이 있대도

두 번은 못 살아.


한 번 정도는

한 번 뿐이니

딱 한 번만 더

살아보자.


다음 생은 없으니까.

다음 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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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달팽이는 자웅동체다 O-O!)



며칠 전, 비가 이틀 동안 내렸었고 도서관에서 집에 오는 밤, 정말 오랜만에 달팽이를 보았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관심 없음'으로 돌려두었던 고양이 영상도 다시 검색해서 보았다. 고양이들은 어느 영상에서나 유연하고, 부드럽고, 사고 치고, 그러면서도 사랑받고 있었다.


달팽이도 자연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쓸 텐데, 남의 떡이 커 보이다 못해 달팽이의 삶까지 커 보였다.



고양이들은 언제나 사료를 다 먹고도 간식 앞에서 눈이 돌아 집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사랑스러웠다.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낮이면 늘어지게 자고 밤에 막 뛰어다녀도 괜찮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털을 뿜어내어도 그 털마저 동그랗게 공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올 때 사람들은 댓글에 갖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낮에 자고, 밤에 일어나 실컷 놀다가 몸에서 빠진 털마저 사랑스러운 존재가 몇이나 될까?


나는 사람이라서 집도 따로 마련해야 하고, 제깍제깍 움직여야 하고, 풀 떼기만 먹고는 못 살겠고, 정상 체중을 넘어가거나 털 빠지면 안 예쁘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이면 자야 하고, 낮에 졸면 게을러 보이는데 쟤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살아가는 데 아무 불편함이 없다니, 아, 부러워.


가끔 안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을 한다. 사는 건 지루하고, 곤란하고, 하나 해결하면 두 가지 문제가 터지고, 조금 건강해졌다 싶으면 아프고,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 못하면 큰일 나는 일이 반복되는데 그 사이에서 깎여나가지 않기 위해 동동거리기 바쁘니.


그래도 좋으나 싫으나 두 번 살래야 한 번뿐이다. 오늘과 내일은 비슷할지언정 다르게 생겼으니 어제와는 다른 마음으로 한 순간 한 순간을 잘 조립해 보려 용쓴다.

운동은 꾸준하게 자기 전 스마트폰 보기는 어제와 다르게 다듬어간다.


 나도 나만의 생존방식이 있겠지, 하면서.

정말이지 두 번도 아니고 딱 한 번이니까 산다.

살아준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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