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교회언니들은 처음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던 여자후배들에게 오빠들보다 친절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내가 교회언니가 되고 나서 알았다.
처음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여학생들에게 오빠들과, 내 또래의 남자애들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고 친절했다. <문학의 밤> 연습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갈 때, 여름수련회를 앞두고 밤늦게까지 준비모임을 할 때에도 오빠들은 같은 방향의 여자후배들을 늘 집까지 바래다주곤 했다. 아버지가 시골교회에 계셨고 나와 동생들이 할머니와 서울에서 살 때는 나도 오빠들의 호위(?)를 받으며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 아버지가 시골교회를 떠나 서울, 내가 다니고 있던 바로 그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을 때엔 오빠들의 친절했던 호위가 사라졌다. 나는 문 하나 열고 사택으로 들어가면 됐으니까.
편해서 좋기는 했는데 오빠들의 관심과 친절함이 사라진 것 같아 섭섭하고 허전한 마음도 들었다.
속으로 좋아했던 오빠가,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여자후배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보면 섭섭하다 못해 슬며시 화까지 날 때도 있었다. 화라고 해봐야 오빠가 말을 걸어올 때 모른 척 피하거나 아무런 대꾸를 안 했던 게 전부였지만.
교회언니들이 친절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된 때가 또 있었다.
남편이 목회를 했던 어느 교회는 아주 큰 교회는 아니었다. 서로 집안 사정들도 잘 알았고, 같은 또래의 아이들도 키우고 있던 터라 편안한 관계를 맺으며 교회생활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온 새 신자들을 낯설어했다.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익숙한 관계 속에서 친밀하고 안정된 신앙생활을 하다가 새로 교회를 찾아온 낯선 사람과 새롭게 관계 맺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온 새 신자 중에는 다행히 성격이 활달해서 교회에 무난히 적응하고 정착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불편한 시선과 낯섦을 못 견디고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교회언니들과 내가, 처음 교회에 나왔던 여자애들에게 덜 친절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들에게 쏠렸던 오빠들과 또래 남자애들의 ‘심하다’ 할 만큼 넘치던 관심과 친절함 때문이었다.
교회의 변화와, 오빠들의 넘치던 관심과 언니들의 친절함이 엄청 심하게 필요한 때다. 교회를 찾는 새 신자들의 숫자는 인구감소현상을 감안해도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 교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