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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만 한 아우 없다. 정말 그렇다!

by 시골사모

추석 전에 원주 작은 산등성이에 있는 가족묘지를 찾아가 성묘를 했다. 그동안엔 교회일과 겹치면 함께 못 할 때도 많았다. 지난봄에 가족묘를 새로 단장할 때도 주일이어서 남편과 나는 함께 하지 못했다. 예전의 봉분은 사라졌고 돌아가신 아버님과 어머님, 큰 아주버님, 둘째 아주버님이 모셔진 터 위에 까맣고 납작한 비석들이 살포시 함께 누워있었다. 그런데 두 분 형님들이 모셔진 자리에 놓인 비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직 건강히 살아계신 큰형수님과 작은형수님의 이름과 생년 월일이 돌아가신 아주버님들의 비석안에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두 분 모두 건강히 생존해 계시는 셋째, 넷째 형님 내외분들과 막내인 남편과 내 생년월일이 새겨진 비석들도 사망 날짜만 비워진 채로 새파란 잔디 위에 함께 누워있었다! 새로 터를 마련하고 비석들을 눕히기까지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을 텐데 막내에다 목회를 하는 우리에겐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신 형님들께 고마운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함께 일렁거렸다.

성묘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서니 추석을 앞두고 우리처럼 미리 성묘에 나선 가족들이 대기실 앞에 서서기다리고 있었다. 엽렵한 조카며느리들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카페같이 꾸며 놓은 대기실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공짜로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에 조카며느리들은 교대로 제 아이들을 챙기면서도 아버님 형제들의 자리를 지키며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전설 같은 가족들, 특히 제 남편들의 어렸을 적 오랜 옛날이야기에 손뼉 치며 큰소리로 웃기까지 했다. 두 며느리 모두 웃는 모습이 예뻤다. 반듯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잘 자란 티가 났다. 손자 손녀들도 어느 한 녀석도 제 엄마옆에 붙어 칭얼거리지 않고 모두 멀찍이서 둥그렇게 앉아 깔깔대며 웃고 떠들며 놀고 있었다.

횡성 한우갈비는 소문대로 정말 맛있었다. 자리에 앉아 벽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고 놀랐던 마음이 당연하다고 생각될 만큼! 그런데 잠시 후에 남편이 보낸 한 줄 카톡을 보고 가슴이 쿵! 내려앉는듯했다.

“오늘 점심 값은 우리가 계산합시다!”

못 본 체하고 다시 고기를 집어 들다 말고 남편 쪽을 쳐다(째려) 보니 제일 열심히 먹고 있었다!

‘어휴, 그만 좀 먹지!’

그런데 30여 년 동안 사모로 지내며 쌓아온 마음 챙기기 내공 덕분인지 금세 또 다른 마음하나가 젓가락에 걸려온 질긴 갈빗살을 뜯는 동안 휙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내야지! 여태껏 막내라는 핑계로 형님들께 제대로 된 밥 한 번 사드린 일이 없었구나 ‘


교회에 있을 때는 얌체 사모 소리 듣기가 싫어 필요이상으로 찻값이나 밥값을 내곤 했다. 그게 오히려 좋은 마음으로 성직자에게 차 한잔, 밥 한 번 대접하려던 교우님의 순수한 마음을 섭섭하게 해 드린 때도 있었다.

화장실 가는 체하고 슬며시 일어나 계산대로 가는데 역시나 눈치 빠른 넷째 형님이 바로 뒤따라 나오셨다. 오늘은 당신이 내려고 했다면서.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다가 “형님,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그러니 오늘은 저희가 낼게요. “라고 간곡히 말씀드리니 형님은 “동서한테 이런 왕고집도 있었네! “하시면서 자리로 돌아가셨다.

내년 추석 성묘 때 또 만나기로 하고(설 때는 각자의 아들 며느리 사위 손주들과 지낸다) 음식점 주차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던 그때였다. 갑자기 넷째 형님이 내 가방을 뺏어 들고 봉투하나를 넣고 지퍼까지 채워 주시고는 당신들 차 앞으로 총총히 날듯이 뛰어가셨고 차는 금세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아버지에 연이어 친정엄마도 일찍 돌아가셨고 여자 형제가 없는 나는 결혼할 때부터 네 분의 형수님들이 마치 나이차이가 좀 나는 언니나 친정엄마 같았다. 형님들은 막내동서인 나를 다정히 대해주셨고 챙겨주셨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진심으로 부럽고 솔직히 살짝 질투도 난다.”라고 말했다.

“넌 복도 많다! 딸 결혼 시키고 엉엉 우셨다는 친정아버지에, 명절 때면 거금의 용돈을 챙겨주셨던 시부모에, 명절에 내려가 눈치 없이 시아버지 곁에 앉아 화투 짝 맞추는 것만 지켜보고 있어도 뭐라 하지 않은 형님들에……“

그래 친구야!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너는 눈치 못 챘을지 모르나 나는 네가 더 살짝 질투나리만큼 부러웠다.

네 다정한 남편 때문에!

언젠가 네가 친구들 만난 자리에서 남편이 보낸 톡을 읽고 슬쩍 한마디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 진짜 나는 아들이 셋이야! 둘째 셋째는 말없이 잘 놀고 있는데 첫째가 칭얼대네. 빨리오라고!” 여기까지만 말했으면 뭐 지극히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했겠지! 그런데 이곳에서 밝힐 수 없는 뒤이어 한마디 불쑥 던진 네 말에 우린 뒷목을 짚으며 말했다.

“빨리 사라져 주라! “

뒤에 이어진 말들은 생략할게.


집에 돌아와 형님이 황급히 건네주고 가신 봉투를 열어보다 깜짝 놀랐다.

한우갈비 값을 제하고도 남을 만큼의 신사임당 모델 지폐가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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