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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최고의 글쓰기선생님 8.

그림책, 결코 만만하지 않다!

by 시골사모

처음엔 그랬다. ‘그깟 그림책, 아이 앉혀놓고 몇 줄 읽어주다 보면 아이도 나도 슬슬 잠이 쏟아지게 되는 마법 같은 책‘이라고. 아이가 그림책을 뽑아 들고 뒤뚱대며 내 곁으로 다가오면 속으로 외쳤다.

‘그래! 잠시후면 내 시간이다!‘


두 돌이 가까워질 때부터 뭔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날마다 똑같은 책만 가져오더니 다른 책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대충 읽어줄 생각에 두 세장을 건너뛰고 책장을 넘기면 내 손을 잡고 빨리 건너뛴 앞장으로 되돌아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생각했던 장면으로 돌아가면 흐뭇한 표정으로 소리 없이 웃었다. 신기했다.

그때는 내 아이만 그러는 줄 알았기에.


아이가 그림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는 때를 놓치지 말자. 집안 청소와 설거지를 좀 미루더라도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는 사인을 보내는 그때엔 모든 걸 잠시 멈추고 아이에게 집중해 보자. 온 우주를 품고 있는 아이의 잠재력이 꽃망울을 맺기 시작할 때니까.

일하는 엄마에게도 마음 아프지만 똑 같이 말한다. 설거지나 집안치우기, 빨래는 기계가 할 수도 있고, 미룰 수도 있지만 아이의 호기심과 의욕에 곧바로 응해줘야 할 그 “때”는 미루지 말아야 한다.


그땐 엄마인 나도 모든 게 다 궁금했다.

언제, 어떤 책을, 얼마동안 어떻게 읽어 줘야 할지. 무엇보다 ‘좋은 책’의 기준이 궁금했다. 어느 아동학 교수는 “ 전집으로 나와있는 책을 미리 사놓지 말라고 했다. 그때그때 낱권으로 사주라고 하면서.

이미 동화책 40권 시리즈를 사놓았을 때였다. 큰일 났다 싶었고 좀 더 알아보고 살걸 하는 후회도 했다.

지내놓고 보니 전집으로 사던지, 낱권으로 사거나 아이의 책 읽기 능력이나 습관들이기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내 경우엔 ) 딸들은 그 책들 중에서 몇 권을 중 고등학교 다닐 때도 읽었다.

마음이 힘들고 외로울 때 떠 올릴 수 있는 인생 책이라며!


아이에게 책 좀 읽으라고 채근하는 내 친구들, 아이친구엄마들, 동네 엄마들을 많이 보았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아동학 교수들은 한결같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먼저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 주라”라고 말했다. 30여 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바뀌지 않는 교과서 처럼 신기하리만큼 똑같이 말한다.

그 무렵 나는 혼란스러웠다.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아기가 ‘나도 책을 읽어야지!’ 깨닫는다고? 아직 시력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았을 텐데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이 보인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든 게 궁금했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은 요즘 시대에 어느 엄마가 출근 전에 아이 앉혀놓고 책을 읽어줄 것이며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쌓여있는 집안 살림하기도 바쁜데 찬찬히 책 읽어 줄 시간이 있을지, 읽어준 뒤에도 아이와 충분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내 딸 같은 그녀들의 친정엄마만큼은 아니더라도 무언가 작은 힘이 되고 도움이 될만한 그림책수업 경험 따위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옛날 내가 궁금했던 것들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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