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곧 글이 된다!
집에 텔레비전도 없고, 읽을만한 어린이 책도 드물던 70년대 초, 쪼르륵 초등학교5학년, 3학년, 1학년이었던 우리 삼 남매는 동네 만화방의 일등 고객이었다. 막내는 만화 보는 것보다 흑백텔레비전 보면서 불량식품 사 먹는 게 주된 목적이었고 나와 둘째 동생은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에 빠져 학교가 끝나면 집에 오기가 무섭게 가방을 던져놓고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희미한 백열등 불빛 아래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만화 보기에 열중했다. 전설의 순정만화작가 민애니, 엄희자와 명랑만화의 대부 길창덕 작가를 60년대생 내 또래할머니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 모두 나처럼 열렬한 독자 들이었을 테니까.
만화를 보고 난 뒤에는 집에 돌아와 기억을 되살려, 일반 공책보다 좀 도톰했던 줄 없는
종합장에 속옷만 입은 여자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 색연필로 정성껏 색칠을 한 다음 가위로 오려냈다.
만화 속에서 보았던 휘황찬란한 공주드레스, 목걸이, 귀고리도 그린 후에 색칠을 했다. 종이옷들을 가위로 오려낼 때, 어깨 부분에 반드시 방향이 바뀐 디귿 자 모양의 고정장치를 달았다.
휴……설명이 좀 부족한 게 죄송하고 아쉽지만, 내 또래의 할머니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실 거라고 믿는다.ㅠㅠ
종이인형 위에 종이옷들을 입히고 내복이 들어있던 종이상자 안에 조심조심 눕혀 놓았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주인공, 공주의 말투를 상상하며 꾸며낸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놀았다.
남동생 둘 중에 한 명이 여동생이었더라면 두 개의 종이 인형을 앞세우고 대화까지 나눠가며 훨씬 재미있게 인형놀이를 했을 테다.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말들을 글로 적어두었더라면 어설프지만 고스란히 한 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을지 모른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나서 무슨 퀴즈 맞추는 듯한 섣부른 질문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는 눈으로 글을 읽으며 마음으로는 엄마의 질문거리를 생각하느라 책 속에 흠뻑 빠져드는 재미를 놓칠 수 있다. “
오래전 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독서지도사 양성과정 공부를 할 때 강사님이 하신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