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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최고의 글쓰기선생님 12.

반성문도 아닌데 왜 자꾸 솔직하게 쓰라는 거야?

by 시골사모

반세기 전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내 또래 할머니들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말이 있다. <일기는 그날 하루의 일들을 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쓴다> 초등학생 때 내가 쓴 일기장은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그때 내가 쓴 일기글이 어떠했는지 읽어 볼 수가 없어 아쉽다. 피해 갈 수 없는 숙제였으니 하루의 일들을 그저 별생각 없이 그대로 공책에 썼고 ‘솔직히 써야지 ‘라고 굳게 맹세하고 쓰지도 않았다. 언제부턴가 일기장은 마치 반성문 같은 글귀들로 내 마음과 상관없이 채워졌다. 엄마를 어머니로 호칭까지 바꿔가며 일기의 끝은 꼭 “어머니께 죄송하다. “ ”동생한테 미안했다. “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로 끝을 맺었다. 선생님은 내가 쓴 일기를 칭찬해 주셨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일기 쓰기를 시작할 때 나는 옛날 선생님한테 배우고 들은 대로 내가 썼던 일기 쓰기 양식을 일러주었다. “일기는 거짓 없이 하루동안 있었던 일 그대로 솔직하게 써야 해! “ 순둥순둥한 딸은 내 말에 알아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거릴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딸의 대꾸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 엄마, 나 거짓말한 거 없는데? 뭘 자꾸 솔직히 쓰래? 잘못한 게 없으면 나, 일기 안 써도 되는 거지? “

다행히 딸은 그림일기 쓰기에 재미를 붙여 그림도 글에 맞춰 그렸고 별문제 없이 일기글도 썼다.


아이에게 일기를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일러줄 때,“솔직히 써야 해”대신에 어떤 말이 처음 일기 쓰기를 시작하는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 줄는지 작가님들의 귀한 댓글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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