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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Jan 25. 2024

연애에서 을이 될 용기

단순한 열정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시작하는 이 책은 마지막 장까지 한 남자를 향한 그녀의 마음을 적어 내려간다.


유명 작가이고 교수라는 사회적 신분을 가진 그녀가 유부남과의 비윤리적 관계를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까발려도 되는 것인지, 읽는 독자가 오히려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어쩌면, 내 안에 깊이 깔린 '도덕적 판단'이라는 것이 이 글을 낯설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작 그녀의 세상에는 어떤 '한 남자' 외에는 그 무엇도 없는데 말이다.  아니, 더 정확히는 한 남자를 향한 '자신의 감정'만이 존재하고 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윤리적 판단을 차치하더라도, "당신이 너무 좋아 죽겠어.  내 영혼까지 너로 가득 차있어"와 같은 내용을 나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것이다.  

연인 관계에서 남자가 더 많이 사랑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어쨌건 그렇게 생각하는 나로서는, 가감 없는 고백으로 '을'의 위치에 서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글을 읽는 내내 나는 그녀의 자존심을 걱정해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알고 있었다.

오히려 이것이 높은 자존심임을.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 용기의 근원은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자존감임을 말이다. 


그래서일까?  연애 과정 중에 으레 느껴지는 감정임에도 적당히 아닌 척 숨기고 싶었던 마음들이 그녀에 의해 폭로된 것만 같아 영 불편하다.  내 자존감은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탈선해 버린 기분이다.


상담 선생님이 내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 이것이었을까?

그녀처럼 어떤 이성적 판단 없이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하는 것.

느껴지는 감정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것.


선생님의 권유로, 아니 에르노의 작품들을 보고 있기에 그분의 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내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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