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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Jan 14. 2024

서른 살 연하남과의 연애를 드러내는 것

고작 서른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책을 보면서 나는 다섯 번을 놀란다.


첫째는, 이미 말해버린 것처럼 책의 분량이 약 서른 페이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는 것이 13페이지인데, '이제 한 챕터가 끝났나?' 싶은 45페이지(마지막 45페이지는 사진이 담긴 지면으로 쪽수조차 표기되어 있지 않다.)에서 전체 이야기가 끝나버린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몇십 페이지 남짓한 책을 비싼 값으로 판매한다며 부정적인 기사도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짧지만, 강렬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글을 쓰도록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 위해 나는 종종 섹스를 했다'라는 초반부의 문장이 얼떨떨했다. 이때부터 나는 이 책이 허구인지, 자전적 소설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라면, 보는 이가 오히려 더 당혹스러울 글을 구사할 수 있는 작가의 솔직한 대범함이 놀랍다.  또, 나도 브런치스토리에서만큼은 '작가'라고 불리는 한 사람으로서, 섹스가 글을 쓰기 위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전술이기 때문에 또 한 번 놀란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책을 끝냄과 동시에 연인과 이별을 해버린다.  '섹스가 일종의 계속되는 창작이 될 수 있음을.  이러한 새로움을 앞에 두고 그가 내게 드러냈던 열정은 나를 점점 더 그에게 묶어놓았다'라는 문장만을 본다면, 상대가 글쓰기를 위한 도구 이상이 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연인은 작가의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전달자 역할을 하면서, 그의 사랑스러운 여인이 삶 전체를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해준다.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인데 이 젊은 남자를 통해 결국 작가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녀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여자 나이 54, 남자 나이 25!

가능한가?  심지어, 남자는 이 여자와의 만남을 위해 기존에 만나고 있던 20살 여자를 떠났다.  

생각이라는 것을 어떤 기준이나 경험에 가두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 무엇이 있겠냐만은, 그 가능성을 열자니, '청년과 엄마와의 관계는 어땠을까?'와 같은 질문으로 그의 성장배경을 탐색해보고 싶은 직업병이 촉발된다.


넷째, 상대 남자를 추측할 수 있음에도, 독자나 기자들은 이것을 가십거리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옮긴이가 놀란 사실에 나도 공감하게 된 부분이다.  

우리나라였다면 어땠을까?  유명 작가의 자전적 소설에 등장한 연인이 짐작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우리는 그를 가만히 두었을까?  책 출간과 함께 그의 신상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누군가의 사생활이 폭로될 수 있는 글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가 또한 책이 불러일으킬 파장 때문에 주저된다고 하면서도 '내가 쓰지 않으면 사건들은 그 끝을 보지 못한다.  그저 일어난 일일 뿐.'이라며, 기록함으로써 그 사건들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다.  경험에 대한 그녀의 애정, 이에 대한 젊은 남자의 이해(이 남자의 동의하에 글이 쓰였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책이 출간된 후에도 문제가 되지 않은 것을 보면 허용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기자를 비롯한 독자들에 대한 경이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니 에르노 젊은 남자의 상대'등과 같은 검색어를 입력해보지 않기로 한다.  최근 이선균 배우의 일을 겪으면서 나의 그런 단순한 호기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절감했기에 더욱 그리하지 않을 것이다.


다섯째, 위의 내용들에서 이미 드러났지만 이것이 허구가 아닌 자전적 소설이라는 점에 또 한 번 입이 벌어졌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적당히 감추면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나와 대조되기 때문이다.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고 나서야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것에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로서는 아니 에르노의 대범함이 존경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상담 선생님께서 아니 에르노와 같은 글을 써보라고 하셨다.

어떤 의미에서의 권유였는지를 불특정 다수가 보는 이 플랫폼에 적기에는 아직 내 용기가 부족하다.  지금의 나로서는,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자주 나온 것과 연관된다는 정도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책을 읽어보는 것이 우선이기에 도서관에 꽂혀 있는 그녀의 책을 모두 들고 왔다.

활자를 통해 처음 만난 그녀는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겼고, '프랑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수식어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직 읽지 못한 그녀의 작품들이 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그리고 그렇게 쓰이는 글들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권씩 만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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