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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Jul 27. 2024

그녀가 돌아왔다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의 후속

높은 습도를 머금은 후텁지근한 바람이 불쾌지수를 한껏 끌어올리는 여름 한낮.

고장 난 선풍기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끈적이는 땀과 범벅이 되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열심을 내는데도 약한 바람밖에 뿜어내지 못하는 선풍기를 보고 있자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신경질적으로 강풍 버튼을 눌러대지만 소용없었다. 

“너도 내 인생 같구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선풍기와의 씨름을 끝내려고 할 때 핸드폰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기다리던 택배 물류 센터의 출근 허가였지만 막상 반갑지가 않았다. 

“구원인지 저주인지 모르겠네.”

깊은 한숨과 함께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툭 내던진 휴대 전화기가 둔탁한 소리를 냈다.

“아이씨, 깨진 거 아니야?”

“으악!”

내팽겨 쳐진 전화기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히던 그녀가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아랫배를 움켜잡았다. 찌르는 듯한 통증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고, 치마 밑으로 번지는 붉은 액체의 정체를 파악할 틈도 허락하지 않았다.      




“저 몸으로 도망을 갈 수 있겠어?!”

“모르지! 저렇게 있다가 갑자기 야반도주라도 할지...”     

‘뭐야? 환청인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낯선 남자들의 대화 소리에 신경이 곤두섰다. 한동안 잠잠했던 환청이 다시 정신을 어지럽히는 요즘이었다. 

‘여긴 어디지? 또 정신병원에 갇힌 건가?’

상황 판단이 재빨리 되지 않아 불안해진 마음에 또다시 남자들의 소리가 들렸다.     

“야! 몸도 성하지 않지. 정신도 온전치 않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아~ 몰라. 일단, 여기 좀 있어. 나 담배 한 대 하고 올게.”     

말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남자 두 명이 서 있었다. 환청이 아니었다. 

‘저 놈들이 또 나를 잡으러 오다니. 빨리 도망쳐야 해!’

그들이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까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이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을 이해하는 것보다 앞섰다. 

급하게 몸을 일으키고 이불을 제치는데 링거줄이 그녀를 붙잡았다. 낭패감도 잠시, 머리가 핑 도는 어지러움이 그녀를 다시 드러눕혔다. 

“정신 좀 들어요? 경찰입니다. 아니~ 경찰에서 출석요구서를 받았으면 출석을 하든지, 아니면 못한다고 연락을 하든지 해야죠. 아~ 아니다. 때마침 우리가 찾아갔으니까 이렇게 병원이라도 왔지. 아무튼, 배임혐의로 조사받아야 되니까...”

“저리 가요! 저리 가라고요! 아~~”

온 힘을 다해 내지르는 그녀의 비명은 곧 울음으로 바뀌었다.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이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은 그녀가 가진 고유의 분위기를 퇴색시키고 있었다. 

“악몽을 계속 꿔요. 그중에서도 낙태하는 꿈을 꾼 날은 하루 종일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밑도 끝도 없이 툭 내뱉어진 말을 다시 곱씹는 듯 말을 멈춘 그녀가 몹시 지쳐 보였다. 그 호흡을 따라 잠깐의 고요를 지킨 내가 물 한 모금을 삼킨 후에 침묵을 깼다.

“낙태하는 꿈이요?”

질문하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공허했다. 아니, 내 질문은 공허했다. 그녀는 내 물음과는 상관없는 말을 독백처럼 쏘아붙였다.

“나는 오빠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에요. 제발 절 좀 도와주세요. 명의만 빌려주면 오빠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었어요. 오빠를 찾아야 해요. 오빠만 찾으면 오빠가 다 해명해 줄 거예요.”

나 또한 그녀의 애절한 간구와 상관없는 질문을 던졌다.

“몸은 왜 그래요? 병원에는 왜 갔던 거예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려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짓던 그녀가 이번에는 나직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반응했다. 

“낙태를 했었어요. 세 번이나 했었어요. 그래도 나는 일을 나갔어요. 돈을 안 벌어오면 오빠가 때렸어요. 오빠한테 맞은 날도 일을 나갔고, 아이를 지운 다음 날도 일을 나갔어요. 선생님~! 그 일이 힘들어요. 택배 물류센터 일이 성한 사람이 해도 힘든 일이에요. 그래도 나는 해야만 했어요. 택배 회사에서 일을 하러 와도 된다는 문자가 저한테는 구원인 동시에 저주예요. 오빠의 발길질로부터 저를 구원해주기도 하는데요. 대신, 아이를 지운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오빠한테 맞은 멍자국이 가시기도 전에 해야 하는 그 일은 저를 죽이는 저주가 되기도 해요. 그러니까 오빠를 꼭 찾아야 해요. 오빠를 찾으면 내가 여기서 나갈 수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오빠랑 결혼도 꼭 하고 싶어요.”

나는 차라리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겪은 피해 상황을 듣는 것보다 자신의 삶을 저주로 만든 가해자와의 미래를 꿈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더  기가 찼다. 

살을 빼서 예쁜 옷을 입고 싶고, 가족 여행을 가고 싶고,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출소했던 그녀는 만신창이가 되어서 나타났다. 

‘잘 지내고 있다’ 던 그녀의 편지가 너무 기쁘고 뿌듯해 자랑하고 싶었던 나의 보람은 빛을 발했다.  

    



재입소 후 첫 만남이었던 이날 이후로는 더 이상 그녀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가 없었는데, 며칠 사이 조현병의 양성증상이 급격하게 나타난 탓이었다. 밤잠을 자지 않고 혼잣말을 하고 갑자기 괴성을 지르고 불쑥불쑥 욕설을 내뱉아 보호실에 갇힌 그녀를 보는 것은 괴로웠다. 못 본 척 지나치려는 나를 꼬박꼬박 알은체 하며 멈춰 세우는 그녀가 야속했다. 애달프다 못해 사나운 눈빛으로 오빠를 찾아 달라며 수용거실 문창살을 붙들고 매달리는 모습은 쓰라렸다. 

그런 그녀에게 억지스러운 상담은 시도하지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더 이상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를 향했어야 할 원망이, 정신장애자의 사회복귀를 돕지 못하는 정신재활시스템에 대한 원망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삶으로 증명되는 내 성과를 앗아간 것에 대한 원망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이 그녀 탓인 것만 같았다. 바보같이 왜 속았냐고 따져 묻지 못해 화가 났다.     




그녀는 왜 다시 범죄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범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범죄자가 되는 이상한 인과를 이해해야 했다. 말장난 같은 연결을 풀기 위해 정신질환 범죄자의 재범과 관련된 주제어들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이미 검색되었던 적이 있는 제목들이 보라색을 입고 나타났다. 지난번에는 놓쳤을지도 모를 해답을 기대하며 다시 프린트하고 형광색을 칠하며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높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치들, 꾸준한 치료에 대한 중요성, 교도소 내의 전문화된 치료프로그램과 인력의 필요성, 그리고 지역사회의 다양한 공조를 강조하는 연구 결과들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이런 주장들은 언제쯤이면 활자의 틀을 깨고 그네들의 삶에 구현될 수 있을까. 그 주장의 기세가 허무했다.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는 것보다 온전치 못한 그녀의 모습을 이용하는 손길이 더 빨랐다. 이중삼중의 낙인을 깨고 일자리까지 찾아들었지만 녹록지 않은 재활의 길은 또다시 그녀를 교도소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하루하루에 깊이 저민 고달픔을 끝내는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죽음의 시도였다.

나는 더 이상 이 현장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출소 전 일상생활에 무리가 없을만큼 건강해졌던 환자가 다시 돌아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교도소에 갇힌 정신질환자 내담자' 매거진 '더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가시적인 효과나 보람을 느끼기 어려운 업무이지만,

이 수용자는 제가 애정을 쏟은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줬었기에 남다른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재발과 재범으로 다시 교도소에서 만나게 됐을 때 느낀 좌절감을 이 글에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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