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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그러나 우울

by 엘엘리온

첫 책이 출간된 지 약 2달 반이 흘렀다.

북토크, 신문사 인터뷰, 라디오 방송 출연 등 그 책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만남들을 가져다주었다.

즐겁고, 설레고, 긴장되고... 그러다 아무런 일정이 없는 어떤 날들은 허전하고.

그랬다.

허전했다.

아무런 일정이 없는 어떤 날... 문득 허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정이 없어서 허전한 것이 아니라 지쳐가고 있었던 것 같다.

단지, 일정이 있는 날은 그에 대한 준비와 긴장감 때문에 느끼지 못했을 뿐.

아침 기상이 점점 힘들어졌고, 보통 7시 30이었던 출근 시간은 9시 직전까지 밀려났다.

퇴근 후에는 해야 하는 일들을 미뤘고 멍 때리며 휴대폰만 잡고 있거나 평소보다 일찍 잠들었다.

진행 중이던 논문은 중단되었고 불편한 마음들은 쌓여갔다.

물론 브런치도 소홀해졌다.

연재 중이던 글을 빨리 쓰라는 브런치의 재촉과 나름의 정을 나누던 이웃 작가님들의 안부에 미안함이 쌓여갔다.


이런 와중에 두 번째 책 출간 계약이 이루어졌다.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제안이었지만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제가 지금은 글을 쓰는 게 조금 버겁게 느껴져요. 원래 저라는 사람이 열정을 쏟은 뒤 회복하는데 시간이 꽤 걸려요."

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감사하게도 천천히 쓰라고 해주셔서 서명을 했지만 기한 안에 맞출 자신이 없다.


급기야, 어제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과장님께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짧게 남기고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을 때는 오후 3시가 지나있었다.

25-26년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식의 결근과 늦잠은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훌쩍 지나가버린 하루가 불안했고,

내가 왜 이럴까 생각했다.

매사에 흥미가 줄어들고 딱히 즐거울 게 없고 뭔가 지치고 심심한 기분들의 연속...

우울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어제의 쉼은 내게 반드시 필요한 하루였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기로 했다.


'출간'이라는 사건은 내 인생에 매우 중요한 변화였다.

이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전혀 생각지 못한 모습이라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기어이 오늘 노트북을 열고 다시 브런치 글을 올림으로써 적응해 간다.


이런 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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