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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캔버스! <워너 브롱크호스트 展>

by Daria


운동 강박증이 있는 내가 발목을 다쳐서 운동을 가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마당에 설상가상으로 덥고 습한 날씨까지 가세하여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저 심연으로 한없이 가라앉아 있던 어느 주말. 좋아하는 책 읽기를 시도하려 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머릿속에 먹구름이 빽빽하게 낀 것 마냥 지적 능력을 요하는 그 어떤 행위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멍청하게 하루를 보낼 순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해가 푹푹 찌는 밖으로 나왔다. 도저히 심오한 전시를 소화할 정신 상태는 아닌 듯 보이고, 그저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예쁘고 쉽고 편안한” 전시를 찾아 방문한 곳이 바로 ‘Werner Bronkhorst(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온 세상이 캔버스> 전시였다. 마침 전시 장소도 그라운드시소 서촌인지라 전시도 보고 동네 산책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힐링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방문한 이 전시는 바랐던 바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고, 복잡한 생각 없이 산책하는 기분으로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간단히 언급하자면 Werner Bronkhorst(워너 브롱크호스트)는 물감을 아주 두껍게 올려 바른 캔버스 위에 미니어처와 같은 인물들을 그려 넣는 독창적인 작업 방식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현존하는 작가이다. 전시의 제목을 <온 세상이 캔버스>라고 지은 바와 같이 그의 작품은 우리의 일상을 배경 및 소재로 삼고 있다. 이를테면 녹색 잔디 위에서 저마다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푸르른 바다에서 각자만의 방식으로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 거리를 걷는 사람들 말이다.



그의 작품은 보자마자 ‘예쁘다’ 혹은 ‘벽에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곧장 드는데, 그의 독창적인 작업 방식도 인상적이지만 색을 사용하는 그의 미적 감각이 이러한 마음이 들도록 하는데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그림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한두 개가 아닐진대, 나는 그중에서도 특히 빛 또는 색을 잘 다루어 낸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난 워너 브롱크호스트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예쁜 색을 잘 끄집어내는 작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깊은 사유를 하도록 만드는 작품들도 좋지만 가끔은 이와 같이 보는 이를 마냥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작품도 참 좋지 않은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나로 하여금 세상을 캔버스처럼 볼 수 있는 유머와 여유를 갖도록 해 주었다는 점이다. 업무량 자체도 많지만, 바이링구얼(Bilingual)로서 기능해야 하는 업무 환경으로 인해 더 큰 피로를 얻게 됨에 따라 복직 후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가던 차에, 워너 브롱크호스트의 작품들은 내게 세상을 예술 작품의 무대처럼, 삶을 예술 작품처럼 보도록 생각의 전환을 제시해 주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난 후, 인생이 잘 안 굴러가는 것 같으면 “아, 지금이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중 위기의 대목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거나,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것들의 포커스를 너무 자기 자신한테 맞추면 피곤해질 뿐이다. ‘나’는 그저 한 예술 작품 위의 작은 오브제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달까.



전시 작품들 중 거의 절반이 원화가 아닌 프린트물이라는 점이 꽤 아쉽지만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여태껏 숨 가쁘게 달리듯 열심히 살아오다가 잠시 숨을 고를 타이밍이 필요할 때 이 전시는 꽤 좋은 장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지금 지쳐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같이 이 전시에서 쉼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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