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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는 외부작용과 변화의 산물 <피에르위그-리미널>展

by Daria



한남동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매번 독창적이고 감각적인 작품들로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하곤 한다. 현재 리움에서 진행 중인 Pierre Huyghe(피에르 위그)의 ≪Liminal(리미널)≫ 전시 역시 이전의 리움에서의 다른 전시들처럼 몸에 전율이 일어날 만큼 깊은 감명을 전해주었고, 인간의 존재와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추상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Pierre Huyghe(피에르 위그, 이하 위그)는 인간 외 여러 생명체와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작품을 만드는 프랑스 출신의 현대미술가로, 그의 작품들은 대개 고정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두 존재를 구분 짓는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에스타텔리움(Estelarium), 주드람 4(Zoodram 4), 리미널(Liminal), 오프스프링(Offspring), 휴먼 마스크(Human Mask), 이디엄(Idiom), U움벨트-안리(UUmwelt - Annlee), 암세포변환기(Cancer Variator), 주기적 딜레마(Circadian Dilema(El Dia del Ojo)), 마음의 눈(S)(Mind's Eye(S)), 캄브리아기 대폭발 16(Cambrian Explosion 16), 카마타(Camata)를 선보였으며, 이중에는 영상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어 작품 수에 비해 관람 시간은 꽤 소요되었다.


앞서 말하였듯, 위그의 작품들은 외부 환경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며, 이 변화는 진화일 수도 있고 퇴화일 수도 있다. 또한,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비인간인지,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등을 구분 짓는 경계가 모호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한 그의 작품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내 안에 철학적 질문 하나가 반복하여 떠오른다. 우리 각자는 완전한 '나'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드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특히 이 질문은 영상 작품 <휴먼 마스크>를 볼 때 더욱 강하게 솟아올랐는데, <휴먼 마스크>가 무슨 작품인지에 대해서 참고할 수 있도록 리움 미술관에서 제공하는 작품 설명 공식 자료를 아래에 작품 사진과 함께 덧붙인다.


휴먼 마스크 (Human Mask) (2014)
후쿠시마 주변 핵 배제 구역을 배경으로 한 <휴먼 마스크>는 자연적, 기술적 재앙 직후 버려진 도시 위를 항해하는 드론 영상과 함께 막이 오릅니다. 버려진 식당에서 어린 소녀의 얼굴 가면을 쓴 원숭이가 자신이 배운 동작들을 인형처럼 끊임없이 반복하다가 때로는 끝없이 기다리는 듯 멈춰 서 있습니다. 이 원숭이는 지시와 본능, 우연과 필연 사이를 오갑니다. 재앙이 일어난 직후 모든 것이 정지된 듯한 순간, <휴먼 마스크>는 유일한 매개자인 무의식적 배우가 뒤집어쓴 인간 존재의 잔존하는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이 영상은 우리가 모두 쓰고 있는 '인간'이라는 가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출처 : www.leeumhoam.org)



그리하여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탈을 쓰고 인간처럼 행동하는 동물 vs 동물과 같은 모습을 하고 동물처럼 행동하는 인간, 둘 중에 누가 더 인간적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으며, 나아가 사회 속의 한 인간을 순전히 그의 자유 선택과 의지에 의해 형성된 지극히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사회가 미치는 영향력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서까지도 돌이켜보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였으니, 위그의 작품들을 통해 옛 철학자의 오래된 진리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위그의 ≪리미널≫ 전시도 그렇고, 리움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보러 갈 만하다. 전시장을 나온 후에도 계속해서 깊은 고민과 사색에 빠져 있도록 만드는 전시이자, 짙은 여운을 남기는 전시이다. ≪리미널≫ 전시와 동일한 층에 ≪현대미술 소장품 전≫또한 진행하고 있어 한꺼번에 예매하여 연달아 감상했는데, 위그의 작품들을 통해 받은 영감을 그대로 가지고 이동하여 또 다른 방면으로 이리저리 굴려보고 이를 확장할 수 있어 좋았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이며, 완성의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저 변화와 정지(죽음)만 있을 뿐.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어느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니, 실수나 균열에 너무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말고, 그저 계속해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며 살아가면 되는 것 같다.



리움미술관 가는 길. 온화한 봄 날씨.


전시장 초입의 안내문


리미널 (Liminal) (2024 – 현재)


오프스프링 (Offspring) (2018)


U움벨트 – 안리 (UUmwelt – Annlee) (2018 – 2025)


캄브리아기 대폭발 16 (Cambrian Explosion 16) (2018)


주기적 딜레마(엘 디아 델 로호)(Circadian Dilemma (El Día del Ojo)) (2017)


주드람 4 (Zoodram 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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