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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탐구 <론 뮤익 展>

by Daria



초여름의 기운으로 가득 찬 어느 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진행하는 <Ron Mueck(론 뮤익)> 전시를 방문하였다. 론 뮤익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터라, 방문하기 전에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조금 찾아보고 갔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혹시라도 론뮤익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은 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본 영상 두 가지의 링크를 첨부한다.


1. https://youtu.be/6KbBjynUOJo?si=vd0qCejoolHgx7FC


2. https://youtu.be/aIvJ6iyGAwE?si=TXrXJriWgBtRalr9





나는 미술 전시 관람 시 오디오가이드나 도슨트와 같이 자세한 설명은 듣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 이유는 타인이 정해 놓은 방향에 나만의 느낌이나 나만의 생각을 제한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방식대로 해석하되, 사전에 작가의 삶 등 배경지식에 대해서는 충분히 탐구해 보고 가는 편이다. 이번 전시 관람 역시 오디오가이드 없이 즐겼는데, 전시 작품의 수가 많지 않고 모두 다 조각 작품이며 제법 심오함을 띠고 있어 나 자신의 세계에서 작품들을 가지고 자유롭게 생각하며 실컷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Mask II>라는 작품을 만날 수 있고, 그를 지나 조금 더 들어오면 <Woman with Sticks(나뭇가지를 든 여인)>와 만나게 된다. 자기 몸집보다 훨씬 커다란 나뭇가지 무더기를 들고 몹시 힘겨워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자마자 매우 인상적이어서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다. 나신 상태의 그녀는 커다랗고 삐죽삐죽한, 누가 보아도 감당하기에 고통이 따를 것만 같은 짐을 지탱하겠다고 허리를 뒤로 한껏 꺾은 채 섰고, 두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기까지 했다. 그러나, 힘겨워 보이는 그녀의 상체 아래로, 두 다리가 매우 튼튼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땅 위를 힘차게 밀어내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나로 하여금 그녀는 충분히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는 동정이나 위안이 아니라 응원과 격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그 벽을 돌아 나오니 <치킨 / 맨>이라는 요상한 분위기의 작품이 나의 눈길을 또 한 번 잡아 끈다. 직사각형 식탁 양 쪽으로 나신의 노인과 닭이 대립하듯, 혹은 대화하듯 마주 보고 놓여 있는데,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가 참 오묘하다. 노인은 사람이고, 닭은 작고 약한 동물이다. 겉보기에 둘의 관계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노인은 굽은 등과 휑한 머리숱, 힘없이 쳐진 피부를 가진, 억만금을 내놓는다 한들 절대 '젊음'을 가질 수 없는, 말 그대로 노인(老人)이고, 닭은 꼿꼿이 세운 등과 매끈하고 풍성한 흰색 털이 돋보이는, 인간으로 치면 젊은 청년과도 같은 존재이다. 젊음을 그리워하는 존재와 젊음을 갖고 있는 존재의 관계라고도 보였다. 더 나아가, 기운 없어 보이는 노인과 대비되는 당찬 자태의 닭은 앞선 관계의 특성을 더욱 부각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복잡하고도 이상하게 얽힌 관계에 놓인 두 대상을 바라보면서, 존재란 원래 그런 것임을, 네가 낫네 내가 낫네란 식의 논쟁은 무의미함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동일한 대상에 대한 인식과 특성은 판이하게 달라질 수도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우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치킨 / 맨




<침대에서>라는 작품 또한 인상적이었다. 흰색 침대 속에서 사색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매우 큰 크기로 제작되어 있는데, 편안하지만 살짝 고독하다고도 느끼는 듯한,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듯한, 많은 현대인들의 복합적인 심리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침대에서




<젊은 연인>이라는 작품은 언뜻 보기에 평범하게 거리를 걷고 있는 연인처럼 보이지만 반전을 지니고 있는 흥미로운 작품으로, 연인의 뒤에서 이들을 바라보면 남성이 여성을 구속하듯 붙들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소유와 집착, 사랑과 관심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젊은 연인




깡마른 사춘기 소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유령>이라는 작품 또한 인상적이었다.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나는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유령'에 빗댄 것인가 생각해 본다.


유령




아마도 많은 여성 관람자들이 <쇼핑하는 여인>에게서 강렬한 자극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작품의 여인은 몹시도 고단해 보이는 모습을 한 채 양손 가득 무거운 식료품 쇼핑 봉투를 들고 있고, 그녀의 품 안에는 어린 자녀가 있다. 너무나도 지쳐 보이는 어머니의 얼굴, 그리고 오로지 그 얼굴만을 바라보고 있는 어린 아기의 대조적인 모습이 이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극대화시켜 주는 것 같았다. 고생하며 우리 형제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나의 어머니에게 새삼 감사함과 연민을 느낀다.


쇼핑하는 여인




수많은 대형 해골 두상이 한가득 쌓여 있는 <Mass>라는 작품은 그 규모로 관람자를 압도하기도 했지만, '죽음'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나타내고 있기에 보는 이를 더욱 압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언젠가는 모두 죽는다.


Mass




넓은 배 안, 뱃머리에 남성 한 명이 홀로 앉아있는 <Man in a Boat>라는 작품도 다양한 생각에 잠기도록 하는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텅 빈 배 안, 역시나 벌거벗고 취약해 보이는 남성의 모습이 어쩌면 삶의 고독을 말하고자 한 것인가 싶기도 했지만, 곧이어 관점을 바꾸어 조금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보았다. '나'라는 넓은 공간에 앞으로 무엇을 채워나가며 항해할지는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하고.


배를 탄 남자



<배에 탄 남자>를 끝으로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왔는데, 출입구 옆 필사하라고 만들어 둔 공간에 이러한 문장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치 <배에 탄 남자>를 보고 느낀 나의 생각이 공감을 받은 것 같아 신기했다. "나는 내가 볼 수 있는 것만큼 크다!"




<론 뮤익> 전시는 앞서 말했듯, 작품의 수가 많지 않지만 그 주제가 심층적이어서 오히려 천천히 음미하며 오롯이 집중하여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어떠한 관점과 태도를 지니고 바라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초여름의 온기와 푸른 빛깔로 세상이 아름답다. 쉽지 않긴 해도 세상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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