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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 너머, 사유가 닿다. <강령:영혼의기술>展

by Daria


바람이 제법 을씨년스럽게 불던 어느 가을날, 그에 못지않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그득한 전시를 관람하였다. <강령 : 영혼의 기술>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제목을 단 이 전시는, 웹페이지의 공식 전시 설명에 의하면, 자본주의 근대성의 가속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논리와 우리의 경험을 형성하는 정치적이고 지적인 구조에 대항하고, 이를 재구성할 수 있는 대안적 '기술'로서 비엔날레를 제시하며, 깨어 있는 삶 너머 세계로 접속에 관한 오랜 열망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영적 세계와의 교류가 어떻게 예술창작의 언어와 방법을 변화시켜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단다.

나는 종교를 믿지도 않고 과학을 신뢰하는 사람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지극히 흥미 목적으로 그로테스크하고 영묘한 것들을 좋아한다. 주술에는 별 관심도 없을뿐더러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그다지 호기심을 가져본 적도 없지만 말 그대로 '주술적인' 디자인이나 모티프는 매우 흥미롭게 여겨왔다. 그래서 이 전시 또한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 기대하고 방문하였다.

전시의 규모는 예상보다 매우 컸고, 매우 다양한 작가들을 조명하고 있으며, 다양한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 작업물(작품)들을 선보이고 있었는데, 심오하고 깊은 주제와 맞물려 굉장히 농밀하다는 감상을 안겨 주었다. 단순히 주술적이라거나 예술적 의미에서의 그로테스크함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영적이며 오컬트에 가까운 느낌을 자아내는 전시였다. 가벼운 마음으로 훑기에는 난해하고 혹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불쾌할 수도 있는 전시이기 때문에, 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깊이 탐구하고 집중하여 관람할 필요가 있으며, 만약 그렇게 정성 들여 관람한다면 꽤 커다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전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것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타인이 만들어낸 세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우리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스스로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고 사유해야 한다는 것일 테다. 결국 세상을 보는 일이란, 그저 제자리에 눈이 잘 달려있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일임은 물론이고,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의 과정이며,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는 작품들의 사진이다.)


바람 부는 서울시립미술관 앞 뜰.



기이한 그림들이 전시장 내부 초입에 가득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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