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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May 05. 2024

독일 정원에 놓인 곱돌 도자기 같은 목소리, 연광철.

R. Schumann | Widmung & Schöne Wiege....


사실 클래식음악 중에서 가곡(歌曲, Lied)은 언어의 장벽 때문에 입문하기에 마냥 쉬운 분야는 아닌 것 같다. ‘가곡’인 만큼 곡 내에서 가사가 하는 역할이 꽤 크기 때문에 가사의 내용이라든가 운율 등의 언어적인 요소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이해하며 듣는 사람에 비해서는 그 곡을 듣고 느끼는 감상의 깊이가 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 또한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가곡은 가장 나중에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가사 번역본도 찾아보고 비슷한 글자나 단어끼리 표시해 가며 운율도 느껴보고 발음의 강세나 길이도 느껴본 후에야 어렴풋이나마 가곡의 매력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지금은 가곡 음반도 망설임 없이 곧잘 구매할 정도로 가곡을 좋아한다. 물론 여전히 독일어는 모르기 때문에 가사 번역본이 필수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가곡에는 비교적 감흥이 덜하던 과거에도 슈만의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은 언어 이해와는 무관하게 매력과 감동을 느꼈고, 운 좋게 이 <시인의 사랑>을 심도 있게 다룬 한 권의 책을 만나며 이 곡들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경탄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슈만 <시인의 사랑>을 비롯하여 슈만의 가곡 세계에 풍덩 빠져 버렸다.


슈만 <시인의 사랑>은 가곡임에도 불구하고 연주회장에서 성악가들을 통해 들어본 적이 이전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참 기쁘게도 올해의 핫한 음악인이라 할 수 있는 베이스 연광철 그리고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두 사람이 <시인의 사랑>을 비롯하여 슈만의 가곡들과 피아노곡을 무대 위에서 들려준다는 소식을 접하여 냉큼 예매를 했다. 더욱이, 선우예권 피아니스트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다비드 동맹 무곡>을 피아노 솔로로 연주한다고 하여 더욱 기대됐다.




춥지만 봄의 기운이 스멀스멀 스며오기 시작하던 3월 중순의 어느 날, 예술의전당 연주회장에는 “온갖 꽃봉오리 움터 오를 때”, “온갖 새들 노래할 때” 따위의 봄을 드러내는 노랫말이 울려 퍼졌다.


슈만의 가곡은 독일어로 되어 있는데 연광철 선생님께서 노래하시니 어디선가 묘하게 홍삼 캔디의 내음이 나는 것 같았고, 버스럭거리는 버버리코트를 입고 체크무늬 헌팅캡을 쓴 노신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독일 곡을 독일어 가사 그대로 부르고 계신데 그 위에 오묘하게 한국적인 정서가 툭툭 묻어나니, 목소리가 정말 보물과 같음은 물론이요, 독자적이며 개성 있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냥 모범생 같기만 한 예술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라서 연광철 선생님이 노래하신 오늘의 해석과 표현이 참신하고 좋았다.


이어진 피아니스트 솔로의 다비드동맹무곡 역시 아주 좋았는데, 마치 아슬아슬한 10대 청소년처럼 맑고 청초한 듯하다가도 이내 어둡고 짙어지고, 바르고 총명한 모범생 같다가도 터프하고 정열적인 청춘이 느껴지는 연주였다. 몇 년 전에 들었던 선우예권 님의 모차르트 연주에서는 깊은 인상을 받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라흐마니노프도 그렇고 오늘의 슈만도 그렇고, 선우예권 님은 이런 분위기의 정서를 표현하는데 탁월하신가 보다. 그의 다비드동맹무곡 연주를 들으면서 영화 <월플라워>가 생각났다. 나는 오래전 야심한 밤에 집에서 혼자 <월플라워>를 보며 느꼈던 충격적인 감정이 연주 내내 훅 떠올라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Schöne Wiege meiner Leiden>, < Meine Rose>, 그리고 대망의 <Widmung>도 모두 정말 정말 귀호강하며 잘 들었다. 선우예권 님의 10대 청춘 같은 피아노 연주, 그리고 곱돌솥을 연상시키는 연광철 선생님의 노래, 이 묘한 조합이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어 관객인 나로서 참 좋은 시간을 경험했다. 뿐만 아니라 슈만 덕후로서 내게 슈만 음악으로 꽉 꽉 찬 연주회는 그저 황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연주하는 R. Schumann의 <Widmung, Op.25-1>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베이스 연광철이 노래하는 R. Schumann의 <Schone Wiege meiner Leiden, Op. 24-5> 유튜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두 사람의 멋진 모습. 그리고 앙코르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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