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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May 18. 2024

광활한 우주 속 나의 소우주. 한국 기하학적 추상미술展

김광석 | 일어나


알고 보면 사연 없는 사람 없고, 사연 없는 가정 없고, 사연 없는 나라 없다(?)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과연 파란곡절의 역사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사다난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수많은 곡절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예술가들은 예술가로서의 신념, 그리고 한국 국민으로서의 신념, 나아가서는 ‘인간’이라는 존재로서의 신념과 같은 것들을 지키고 표현하며 대한민국 미술 역사를 끊임없이 써 나갔다.


특히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 그리고 이어진 한국 전쟁기는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한국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탄압의 분위기와 먹고사니즘의 우세로 ‘예술’이란 것은 표현하기도, 향유하기도 쉽지 않은 대상으로 존재했다. 그럴진대 더더욱 추상미술과 같은 분야는 사람들에게 환영받기 힘든 것이 실정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유영국 작가의 작품도 그러한 정세 속에서 변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영국 스타일로 확립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러한 험난한 시기에서 아스팔트 도로 틈에도 꽃을 피우듯 한국 추상미술은 꾸준하게 맥을 이어왔고,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0년이라는 세월 동안의 한국 추상미술 역사를 망라하고 정리한 전시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작품성은 차치하고 그 역사적인 의의만으로도 나는 새삼 감격스러웠다.


사진 속 네 점의 작품 모두 유영국 작품.


추상미술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는 게, 구상화처럼 그리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오히려 작가의 내면을 더욱 투명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감상자의 내면을 투명하게 비춰 주기도 한다. 또한 같은 작품인데도 순간순간의 내 기분, 상황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감상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추상화를 볼 때면 내가 인식하고 있지 못하던 현재 심리 상태를 인지할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그림을 봄으로써 나 자신과 대화한달까. 이번 전시 역시 기간 차를 두고 두 차례 관람하였는데 첫 번째 관람 때 인상 깊었던 작품과 두 번째 관람 때 인상 깊었던 작품이 다르다는 것이 재미있어 괜히 웃음이 났다. 나를 한국 추상미술로 이끈 시발점과도 같은, 좋아하는 유영국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 첫 번째 관람 때엔 변영원 작가의 ‘원(圓)’ 시리즈에 마음이 깊이 동하였는데 두 번째 관람에서는 하인두 작가의 어딘가 격동적인 작품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무엇보다 하인두 작가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그림에 뚜렷하게 반영되어 있는 모습이 색과 곡선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 재미있었다.


(좌) 하인두, (중) 변희천, (우) 박서보 작품.


어쩌면 뜬금없을, 너무 확장된 범위의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 줏대 있는(?) 작가들의 전시에 대한 나의 감상을 정리하는 자리를 빌려 굳이 한 마디 덧붙여 보자면, 내 중심을 잃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에서 살든 덜 흔들리고 강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미숙한 나는 때때로 주변으로부터 영향받고 그것이 내 내면에 파동을 일으켜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원(原)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힘은 “나는 그저 나야.”라는 생각인 것 같다. 이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에 걸린 수많은 작품들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수학적이고도 단순한, 하지만 끝없이 아득한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우리의 삶, 우리의 우주. 그 광활한 우주 안에서 그저 작디작은 미생물일 뿐인 나 하나가 걸어가다 발목 좀 삐끗한다고, 혹은 철퍼덕 미끄러져 넘어진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허물을 알겠나. (안다 해도 뭐 어쩌라고)  그러므로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저 ‘나’의 작고 소중한 소우주를 꾸려나가며 내 '쪼'대로 살다 갈 것이다.


원을 소재로 그린 변영원 작가의 작품들.


(좌) 김환기, (중) 서승원, (우) 조병현 작품.


이성자 작품 앞에서.


공상가인 파워 N 인간은 그림을 보다가 이렇게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김광석 님의 노래 <일어나>가 떠오른다. 유튜브에 있는 라이브 영상 링크를 첨부한다.♪


삶이 참 쉽지 않다는 것에 저 역시 매우 동감하지만 우리 부담감을 조금만 내려놓고 그냥 나만의 인생을 잘 살아 봐요. 일생은 우리 각자가 단 한 번 부여받은 기회잖아요. 그냥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예쁘고 깜찍하게 꾸며 나가자고요. 다들 파이팅! 물론 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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