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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May 26. 2024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展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만화책 <만화로 보는 그리스로마신화> 시리즈(당시 그림작가 : 홍은영)가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유행을 했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그 후 나는 그리스로마 신화 및 역사,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사 덕후였던 나는 이로 인해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관심을 돌리게 되었고, 한때 멀쩡한 책이 너덜너덜 걸레짝이 될 만큼 세계사 책을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또한, 자연스레 신화를 바탕으로 한 남유럽권의 예술작품에도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특히 그리스로마신화 이야기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를 통해 조소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여러 조각품들.


신화는 현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이기에 나처럼 공상을 즐겨하는 사람들에겐 아주 흥밋거리가 아닐 수 없다. 고대 사람들이 당시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인간사의 여러 현상에 대해서 나름대로 인과관계를 풀이해 보고자 만든 것이 신화였다고 하니 그 이야기가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있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욱 재미있는 것 같다.


TMI이지만 난 아테나 여신을 좋아했다.


신화를 소재로 한 여러 조각상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하는 <그리스가 로마에게, 로마가 그리스에게> 전시는 그 옛날 그리스 로마인들이 바로 이러한 흥미진진한 신화를 주요 소재로 하여 제작했던 여러 예술 작품들(주로 조각)을 선보이며 당시 이들의 사고방식, 문화, 생활상 등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의복 양식이나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문화 및 사고방식 등이야 내가 오랫동안 자라온 곳이니 깊이 이해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 그것도 한참 멀리 떨어진 먼 이국의 문화와 역사는 그 이름과 같이 ‘이국적’이고 ‘이색적’이기에 새롭고 흥미롭다. 그들의 수많은 조각상, 도자기, 공예품 등을 살펴보면서 그 전시 공간 안에 있는 동안만큼은 내가 고대 남유럽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 혹은 배를 타고 구라파로 여행을 떠난 옛 모험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것과는 다른 방식의 예술 형태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특히, 이 전시를 보고 나오면 바로 근처 동건물 내에 ‘국립중앙박물관’ 답게 동양 미술과 조선 미술을 전시한 공간 또한 마련되어 있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들 간에 어떠한 문화 예술적 차이가 있는지 생생하게 비교 대조해 보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들의 생활 양식이나 사고방식 등이 엿보인다.


고대 유럽 신화 이야기로 서두를 떼기는 했지만 사실 이 전시에서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테마는 ‘죽음’이었다. 박물관에 비치된 팸플릿에 기재된 내용을 옮겨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에게 죽음은 중요한 주제이다. 죽음은 누군가를 다시 볼 수 없는 슬픈 이별이자 두려운 일이었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산 사람이 계속해서 죽은 사람을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사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을 잊지 않고, 자신도 잊히지 않기 위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무덤을 만들고, 무덤 앞에는 커다란 조각상과 장식품을 두었다.
그리스와 로마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서로 가까운 나라이다. 두 나라는 신화를 통해 인간이 사는 세상과 죽음의 세계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나누었다. 앞 시대였던 그리스는 로마에게 다양한 문화를 전했고, 로마는 그리스의 문화를 즐기고 퍼뜨려서 그리스 문화를 더 오래, 더 널리 남길 수 있었다.


그들이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수많은 조각상과 장식물들을 보며 그들의 애틋한 마음이 내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그 전시품들 앞에서 숙연해짐과 동시에 마음이 처연해졌다. 특히 어린아이의 죽음을 추모하는 조각상 앞에서는 아이를 먼저 떠나보내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을 그 부모의 마음이 느껴져서 나 역시 애달프고 서러워지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아이를 잉태한 순간부터 시작하여 아이가 태어나고, 첫걸음마를 떼고, 자그마한 입으로 엄마 아빠를 부르던 그 모든 역사적인 순간들을 지나 불행하게도 예고 없이 일찍 찾아와 버린 아이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시간의 흐름이 내 머릿속에도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그리하여 사고방식도 다르고 생활방식도 다른 먼 나라 사람들이지만 죽음 앞에 결국 우리 모두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시 끝머리에는 이 그리스 로마 사람들에게 괜스레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오른쪽의 경우 죽은 사람에 대한 그들의 유머가 돋보여 재미있다.


어린 아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며 만든 조각품들.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된 이 전시는 안내된 바에 의하면 2027년 5월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예술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둘러보고 가도 좋겠다.


조각상의 눈에 생기를 더하기 위한 하트모양 조각 기법.


추천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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