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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Jul 06. 2024

저마다의 목소리가 한데 모여. 필립파레노 展.


올해 상반기에 다녀온 전시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전시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않고 이 전시를 말할 것이다.


바로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1964~)의 개인전 《Voices, 보이스》이다. 그의 전시는 다양한 설치미술, 영상, 드로잉, 사진, 퍼포먼스 등이 다채롭게 어우러져 관객에게 다양한 경험과 감상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막>, <내 방은 또 다른 어항>, <내 이름은 안리>, <여름 없는 한 해>, <리얼리티 파크의 눈사람> 등 전시장 안 그의 여러 작품들은 날마다 변화하는 시공간적 환경의 영향을 받아 나날이, 시시각각 능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리움 미술관 건물 내부에 들어서기 전에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아마도 야외에 설치된 <막>일 텐데, 센서를 통하여 야외의 기온, 습도, 바람 등의 외부 환경 요소들을 수집하고 이를 사운드로 전환하여 미술관 내부로 흘려보내는 역할을 한다는 이 기특한(?) 설치물은 그 생김새만으로도 사이보그 영화에서 나올 법한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내가 방문한 날의 날씨는 비구름이 잔뜩 낀 은빛 하늘에서 종종 이슬비를 떨어뜨리곤 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전시장 내부에 몽환적이면서도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편안하면서도 약간 우울하기도 한, 딱 그날의 날씨와 유사한 분위기의 소리가 구름처럼 떠 다녔다. 여기에 전시장 유리창의 누런 빛깔은 그 소리의 다중적이고도 양면적인 심상을 한층 더 극대화시켜 주는 듯하였고, 그 소리 위에 덧입혀진 <여름 없는 한 해> 피아노 소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었던, 내 인생의 수많은 순간순간 기억의 조각들이 마치 밤에 피는 꽃잎처럼 뜬금없이 꽃망울을 틔우도록 만들었다. 천장에서 피아노 뚜껑을 타고 떨어져 내리는 주황색 가루들은 어쩌면 그 순간들이 떠나고 난 후에 남은 기억의 파편들, 혹은 감정의 잔해들처럼 느껴졌는데, 외로움, 슬픔, 기쁨 등, 기억 너머 잔류하는 모든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우르르 무너지며 동시에 음악으로 치환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아노에서 흘러나오는 자동연주는 결코 명연도, 명곡도 아니었으나 나로 하여금 어쩐지 그 곁을 떠나지 못한 채 한참 동안이나 서성거리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나의 곁에서 함께 서성거리는 또 다른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풍선 물고기들이다. <내 방은 또 다른 어항>이라는 이름의 작품이기도 한 이 물고기들은 정해진 지점 없이 전시장 내부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물고기들은 홀로, 어떤 물고기들은 우르르 한데 몰려있기도 하였는데 이 모습이 꼭 저들끼리의 작당모의 현장 같기도 하고, 혹은 갑자기 ‘그들의 어항’ 안에 들이닥친 사람들에 대한 공포와 경계심의 표현 같기도 하였다. 또한, 어떤 물고기들은 도대체 어떻게 저런 곳까지 들어간 것인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의 구석 또는 천장에 은신해 있었는데 사람들로부터 도피하여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제법 흥미로움과 동시에 그들의 자유를 규시하고 있는 데 대하여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이 하나의 종합된 광경은 단번에 나를 압도하였고, 앞으로 찬찬히 둘러보게 될 그의 전시에 깊이 녹아들 수 있도록 활짝 문을 열어 주었다.



첫 번째 공간(지하 1층)을 지나 계단을 통해 1층 전시공간으로 올라가던 중 서서히 일렉트릭 기타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나의 심장 또한 두근거리며 설레기 시작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내가 록음악 또한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신기해하는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어쨌든 나는 록음악을 좋아하고 그리하여 이 기타 소리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소리를 따라간 그곳에는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들판의 영상이 있었는데 왜인지 그것이 나의 양면적인 내면을 자극하여 울컥하게 만들었다. 또한 영상 맞은편에는 특이한 사진이 하나 놓여 있었는데, 개구쟁이 같은 소년의 얼굴에 건장한 성인의 몸을 합성한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앞서 자극한 동일한 감정을 다시 한번 더 크게 자극하였다. 그 사진까지 보고 나니 이 공간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와, 작가가 이 공간을 채울 때 느끼고 생각했던 바가 어쩌면 서로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맹랑한 확신이 들었다.

인상적이었던 <엔딩 크레딧>을 지나 <안리 : 세상 밖 어디든>의 공간으로 이동하니 그곳에서는 이차원 캐릭터 ‘안리’가 영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권리, 그리고 가상세계와 현실세계 사이에서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뇌하며 혼잣말인 듯 연설인 듯한 말을 내뱉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참 좋았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수의 작품이 넓게 포진되어 《Voices, 보이스》를 구성하고 있는데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깊은 영감을 준다. 예상한 것보다 전시의 규모가 크고 모든 작품들의 개개가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서 전체를 돌아보는 데에 엄청난 체력을 요하였다. 어쨌든 그만큼 재미있는 전시임에는 틀림없다.


눈에 보이는 게 많지만, 그걸 다 볼 필요는 없어요. 거기서 무엇을 포착해서 이해하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뭐든 여러분이 보면서 알아낼 수도 있고, 알아냈다는 점에서 그건 근사할 거예요.
(잡지사 W와의 인터뷰 中, 필립 파레노)


라고 작가 필립 파레노가 이야기했듯 전시 작품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모두 다 다를 것이다. 특히 이 전시는 더더욱 그러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몇 가지 작품들에 대해 내가 느낀 바를 조금 풀어보았는데, 누군가는 나와 공감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바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작품에서 어떤 것들을 느끼고 생각하였는지 새삼 궁금하다.


<여름 없는 한 해>


<삶의 의지를 넘어서 생동적 본능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이름은 안리>


<움직이는 조명등>


Philippe Parreno (출처 : 리움미술관, 사진 : 김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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