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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Jul 27. 2024

그의 시선을 따라가며 뉴욕 산책, 이경준 사진展.



어느 비 오는 봄날에 다녀왔던 사진전 <One Step Away>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진작가 이경준의 첫 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총 네 챕터로 구성되어 뉴욕에서 그가 보고 느낀 것들을 사진으로 제시하고 있다. 각각의 챕터들은 Paused Moments, Mind Rewind, Rest Stop, Playback이라는 주제를 달고 있으며, 이들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모두 뉴욕에서의 일상적인 풍경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때때로 사진 속에 많거나 혹은 적은 사람들이 담겨있기도 하지만 ‘인물’을 주 피사체로 삼고 찍었다기보다는 인물들과 함께 어우러진 ‘풍경’에 초점을 맞추어 찍었다고 보인다.


이 사진전은 그라운드 시소 센트럴점에서 열렸는데, 조심스레 속마음을 말하자면 나는 그라운드시소 전시 특유의 그 바이브를 아주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더군다나 관람객들의 사진 촬영이 허용된 전시에 대해서는 더더욱 거부감을 갖고 있는 편이라, (이경준 작가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저 인스타그래머블한 장소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일 뿐임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전시 초창기 때만 해도 내가 이 사진전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는 5월의 평일 어느 날, 전시장 내부가 한적한 틈을 타서 방문하였고, 결과는 아주아주 만족스러운 전시였으며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챕터 <Paused Moments>에서는 자연의 빛을 만난 도심 속 건물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평소 해질녘 황금빛으로 찬란히 빛나는 저녁의 광채를 머금은 하늘이며 나무, 풀꽃들, 그리고 건물들을 사랑하는 나로선 이 공간에 들어오자마자 절로 행복의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특별하거나 독창성이 느껴지는 사진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 설렘, 편안함 등의 긍정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섹션이었다.


Paused Moments (모두 사진작가 이경준 작품)



두 번째 챕터 <Mind Rewind>는 사람들과 건물 및 풍경 간의 유기적인 관계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기하학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연출해 보여준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는 이 두 번째 챕터가 가장 좋았다. 기하학적 패턴이 주는 시각적인 안정감이라든가 약간은 변태적이라 할 수 있는 그 감성이 좋았고, 빌딩 옥상에서 각자의 휴식 시간을 갖고 있는 도심 속 도시인들의 소소한 풍경들 역시 좋았다.


Mind Rewind (모두 사진작가 이경준 작품)



세 번째 챕터 <Rest Stop>에서는 뉴욕 센트럴파크의 푸릇푸릇한 초록빛깔 풍경, 혹은 두근두근 새하얀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저 전시장 벽에 걸린 사진들을 따라가며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잔디밭에 누워있지 않아도 풀냄새와 산들바람의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고, 정말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지 않아도 물결의 파동이 내 살갗을 에워싸는 것 같았으며, 정말 설원을 뒹굴고 있지 않아도 눈(雪)에 비친 겨울 햇살의 포근함이 내 얼굴 위로 내려앉는 것 같았다.


Rest Stop (모두 사진작가 이경준 작품)



세 챕터를 지나는 동안 나의 마음은 더욱 행복해졌고, 나의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그러한 여정 끝에 들어선 네 번째 챕터 <Playback>에서는 이경준 작가와의 뉴욕 산책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나의 개인적인 걱정거리나 고민, 불안 등을 드넓은 뉴욕 도심 속 어딘가에 툭- 버리고 오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Playback



다녀온 지 좀 오래됐기도 하여 감상기를 최대한 간결하게 쓸 요량이었고, 그러기 위해 최대한 절제하면서 썼는데 막상 다 써놓고 보니 마냥 짧지는 않은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전시였기에 어쩔 수 없다. 원래 3월 31일까지 진행하기로 기획되어 있던 전시인데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 9월 18일(수)까지로 연장되었다고 하니 이 전시가 좋았던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라. 바쁘고 정신없는 매일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 도시인들, 이곳에서 이경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과부하가 걸려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지친 마음을 달래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경준 사진전 <One Step Away | 원 스텝 어웨이>
전시 기간 : 2023.10.27.(금) ~ 2024.09.18.(수)
전시 장소 : 그라운드시소 센트럴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14 그랜드센트럴 3F)
티켓 일반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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