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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ria Aug 24. 2024

은빛여명에서 땅거미가 퍼지기까지. 스웨덴국립미술관展.

Jean Sibelius | The Spruce, Op. 75 No. 5


새벽부터 황혼까지

이 전시를 이보다 더 정확하고 간결하게 설명하면서 그와 동시에 이처럼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누가 제안한 부제인지 몰라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새벽부터 황혼까지”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문구였으나 전시를 모두 보고 나니 왜 이런 부제를 달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겠더라.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수교 65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되었다는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 전시는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미술가들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당시 막 부상하던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북유럽 회화의 화풍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그리고 그들 자신의 고유의 화풍과 결합하여 어떤 식으로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그 과정 및 결과를 탐구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누구나 익히 잘 알고 있는 인상주의의 대가들의 작품을 떠올린다면 이 전시의 그림들이 그다지 새롭고 경이롭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산업화 시기의 북유럽 회화의 변천사를 한눈에 살펴보고, 더 나아가 그들의 생활양식이나 환경이 어떠했는지 그림을 통해 깊이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내게는 꽤 인상적인 전시였다. (작품 수가 아주 많지 않았다는 점도 물론 한몫했다. 난 규모가 너무 큰 전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상주의 영향을 받은 시기답게 풍경화의 비중이 높았고, 그 덕분에 그림을 통하여 아름다운 북유럽 자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이 화폭에 담은 자연의 풍경에는 화가 개인의 정서나 생각이 덧칠되어 하나의 새로운 풍경으로 재탄생했겠지만 어쨌든 그것 또한 북유럽의 자연임은 분명하다.


풍경화뿐만 아니라 인물화의 수도 꽤 많았으며, 마지막으로는 스웨덴의 국민 화가 ‘칼 라르손(Carl Larsson)’의 작품들을 비중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칼 라르손은 주로 자신의 가족들을 모델로, 자신의 집을 배경으로 삼아 많은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같이 모두 따뜻하고 소박한 한편 그만의 개성이 묻어나기도 하여 보기만 해도 내 손발에 온기가 더해지는 기분이고 아직 탄생조차 하지 않은 나의 가정을 그리워하게 된다. (여기서 말한 ‘가정’은 내가 자식으로서 부모님과 함께 구성하고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결혼을 하여 배우자 및 자식들과 함께 구성하는 공동체를 의미하고 쓴 표현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많은 스웨덴 군인들이 그의 그림집을 보며 정신적 위로를 얻었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의 그림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의 온정을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따뜻한 촛불 혹은 등불 같은 존재인 것 같다.


그래서 왜 이 전시의 부제가 “새벽에서 황혼까지”였냐고? 물론 말 그대로 새벽의 희끄무레한 은빛 풍경에서부터 땅거미 진 어두운 풍경까지의 그림들을 다채롭게 걸어두기는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북유럽 미술가들의 새로운 화풍이 시작되는 여명에서부터, 그들의 독자적인 빛깔, 이를테면 황혼의 어스름 또는 가족들과 함께하는 휘게(hygge) 등으로 대변되는, 독창성을 찾은 황혼까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 같고, 그를 정리한 문구가 바로 “새벽에서 황혼까지”였지 않을까 싶다.


전시된 작품들이 난해하다거나 까다롭지 않다. 그들의 동네에 여행을 간다는 마음으로 포용을 담은 배낭 하나 메고 감상한다면 충분할 것이다.


해당 전시 중 찍은 몇 점의 작품들. (전시 규정상 사진촬영 허용, 플래시 비허용으로 안내됨.)





북유럽 미술 이야기를 떠들어댔으니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작곡한 무수히 많은 명곡들이 있으나 오늘은 Op. 75 No. 5, 일명 '가문비나무(The Spruce)'의 연주 영상 링크를 첨부해 본다. 피아니스트 Janne Mertanen가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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