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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Apr 15. 2024

농경, 정부, 종교

<총 균 쇠> 독후감상문


출간된 지 25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도서관 대출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작이다. 먼저, 도서를 구입하지 않으면 잘 읽을 것 같지 않아 양장판으로 구입했다. <총 균 쇠>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 연구 도서 중 하나다. 그중 가장 완성도가 높고 쏟아지는 찬사를 받은 저서는 199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총 균 쇠>는 13000년 전의 지구를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인류를 이해하고 그만의 박식함으로 현재의 인류를 해석하고 있다.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은 무엇인가?' 수렵 채집민에서 우리는 어떻게 현대 문명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그는 총, 균 그리고 쇠가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꿨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것은 근접 원인일 뿐 궁극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과연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궁극적인 힘은 무엇일까?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종족이지만 그들의 일상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아직도 누구는 태어나자마자 마실 물조차 부족한 척박한 곳에서 자라나며 누구는 풍족한 의식주를 누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되는 것일까? 아직도 백인은 우월한 인종이며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라는 식상하고 잘못된 인식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태어난 국가를 탓해야 하는가?


 인류 진화라는 큰 틀에서 보면 어디에 살든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 상관없이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인 인류라는 하나의 종족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 간에는 복잡한 계층이 존재하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삶의 질이 다르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되는 것일까?


 현재 인류의 소득과 문화적 격차를 설명하기 위해  1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 시절에는 모든 인류가 먹을 것을 수렵하고 채집하는 원시인이었다. 원시인들은 대지의 다양한 식물과 열매를 먹으며 대대로 살아있는 자신의 몸뚱이에 실험을 해야 했다. 그 결과 먹을 수 있는 식물과 그렇지 않은 식물을 구분하게 되었고 그중 맛이 좋은 식물들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농경의 시작인 것이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사냥을 해야만 섭취할 수 있었던 단백질 공급원들을 가축화하기 시작했다. 코끼리나 고릴라처럼 키우는 데 오래 걸리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었다.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하여 사람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흑곰, 얼룩말, 가젤 등은 가축화할 수 없었다. 복잡한 구애와 교미의 과정이 필요한 치타 또한 가축화할 수 없었다. 비교적 순하고 고기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의 대형 포유동물들은 무분별한 사냥으로 이미 멸종을 도래했다.


 농경의 시작과 더불어 인류는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많이 걸어야 하던 수렵 채집인의 특성상 엄마를 걷지 못하게 하는 어린 자녀나 그 태아는 죽임을 당했다. 거처가 생기면서 출산율이 높아졌고 풍부한 먹거리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줄었다. 그러나 농사를 시작한 시기는 대륙마다 상이했고, 농사를 할 수 없는 척박한 대륙도 존재했다.


 농경 사회는 부족 사회에서 군장 사회로 나아가 마침내 국가라는 복잡한 사회적 단위를 탄생시켰다. 국가의 권력자들은 세금을 거두고 종교를 제도화했다. 종교는 낯선 국민들에게 유대감을 형성시키고 자신의 삶을 희생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줬다. 전쟁터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한 국민들 덕분에 국가는 더 단순한 단위의 사회들을 정복하고 다른 국가의 공격으로부터 국가를 지킬 수 있었다. 자신을 국가에 희생하는 정서는 국가에 만연했지만 부족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이 큰 이바지를 한 것이다.


 작물화와 가축화에 성공한 국가들은 인구 밀도가 높아진 것이다. 국민은 식량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권력자 집단까지 먹여 살릴 수 있는 잉여 식량까지 생산해 냈다. 자급자족 사회는 경제적으로 발달했으며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높은 인구 밀도로 군사적 이점까지 누렸다. 그러나 농경의 확산은 대륙마다 크게 달랐다. 지리적, 생태적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유라시아 대륙이 단연 돋보였다. 유라시아는 중심축이 남북 방향인 아프리카 대륙보다 기후나 위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강한 힘을 가진 국가는 높은 인구 밀도와 지리적으로 좋은 환경의 대륙을 갖고 있었다. 결국 현대 인류는 '환경'이라는 아주 막강한 요인으로 소득과 생활 수준이 차이가 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경제 강국은 유라시아가 아닌 영국과 유럽이 아닌가라는 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 농경을 먼저 습득했지만 과학 기술은 유럽을 압도하지 못했다. 유럽은 넓은 대륙에 다양한 제도를 가진 국가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반면 중국은 그 넓은 대륙을 하나의 정부가 관리한다. 중국 정부는 1405년경 보물선 선단을 파견했으나 파벌 간의 투쟁으로 전면 항해를 금지시켰다. 총기를 엄격하게 금지하며 기술 발전에서 퇴보한 일본처럼 말이다. 그 시기에 이탈리아 출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유럽 전역에 다섯 차례나 서쪽으로 탐험할 배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네 번의 거절 끝에 스페인 국왕에게 요청을 받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분열된 유럽과 통일된 중국의 결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농경으로 식량을 확보한 부족은 결국 높은 인구 밀도로 국가로 승화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국가에서는 기술의 진보가 흔한 일이었다. 국가들은 가축에게서 옮은 균으로 콜레라, 장티푸스 등의 전염병을 창궐했다. 그들은 다양한 균을 접하면서 균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갔으며 수렵 채집민의 작은 사회에 낯선 균을 전파시켰다. 국가는 더 작은 사회의 집단, 즉 수렵 채집민의 부족 사회에 그들이 만든 총과 균 그리고 쇠로 만든 칼로 그들을 파멸시키거나 지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가가 총과 균 그리고 칼을 지니고 있었기에 승리한 것이 아니다. 부족에게 총과 균 그리고 칼이 있었어도 수렵 채집민은 파멸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는 전쟁을 이끌어 나갈 지도자도 없었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만한 충성심 높은 국민도 없었다. 무엇보다 인구의 수가 부족했다. 결국은 농경이다. 비옥한 땅으로 인구 밀도를 높인 인간 사회는 궁극적으로 강한 국가를 만들었다.





농경민은 훨씬 강력한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정복 전쟁을 더 유능하게 수행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엘리트 계급이 지배하는 중앙집권 체제하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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