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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스 Apr 24. 2024

철학이란 옷을 입은 우아한 동심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 북 에세이

 잠이 오지 않은 밤이면 머릿속에는 어렸을 때나 했던 말풍선이 끊이질 않는다. 구름처럼 떠 있는 말 풍선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가 끝내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풍선에 바늘을 갖다 댄다. 저자는 밤이면 문득 정글에 두고 온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동심을 잊은 어른은 부모가 되면서 상상의 나래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물음에 당황한다. "귀는 왜 귀 꺼풀이 없을까?", "나는 어느 다리 밑에서 주워 왔어?" 등과 같은 질문이 쏟아지는 밤이면 저자는 철학에 우화를 더해 본다. 


 철학이라고 하면 딱딱하고 어려운 다소 재미없는 학문이라고 치부한다. 그러나 저서는 다르다. 마치 동화 속에서 철학이 헤엄치는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푸근하고 다정한 아빠다. 첫째 딸과 어렸을 적 서로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그림을 좋아하던 딸이 그린 그림에서 그 이야기의 흔적들을 발견한다. 저자의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자라난 이야기와 그의 딸이 그린 그림을 모아 기쁜 비밀을 발견한다.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밤>에는 그간 저자와 그의 딸이 밤이면 그렸던 머릿속 말 풍선이 한데 모여있다.  





 북극에 사는 곰을 떠올리면 누구나 하얀색 털이 가득한 백곰을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는 북극에도 숲에 사는 반달곰이 살고 있었다. 곰들은 아주 작은 열매를 좋아해서 하루에 수 천 개는 따먹곤 한다. 그러나 북극에는 다채로운 열매는커녕 초록 잎사귀도 보기 힘들다. 북극에 사는 반달곰과 백곰은 열매 대신 맛 좋은 물개를 사냥해서 먹기 시작했다. 열매만큼 달콤하고 양이 푸짐한 물개는 북극에 사는 곰들에게 든든한 식량이었다.


 물개는 온통 하얀색인 세상에 갈색 털을 갖고 있는 반달곰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 거대한 몸집과 날카로운 발톱은 물개들이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었다. 반달곰은 흰색뿐인 북극에서 유독 눈에 잘 띄는 갈색의 육중한 체구 때문에 번번이 물개 사냥에 실패했다. 그 결과 북극의 반달곰은 모두 굶어 죽고 지금의 북극곰이라 불리는 백곰만 남게 되었다. 


 말을 하기 싫으면 입을 닫으면 된다. 보기 싫으면 눈을 감으면 된다. 그러나 코와 귀는 닫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맡기 싫은 냄새와 듣기 싫은 소리는 피할 수 없다. 가만 생각해 보니 코는 닫을 수 있는 신체 조직은 없지만 구개 호흡을 대신해서 냄새를 피할 수 있다. 그렇다면 듣기 싫은 소리는 어떻게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지금처럼 봄바람이 설레는 어느 오후의 카페. 볕이 좋아서 카페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 커피를 내리는 기계 소리, 옆 테이블 연인의 사랑을 나누는 소리, 대각선 테이블의 호탕한 웃음소리, 중앙 테이블의 수다 소리가 귀에 가득하다. 소리들은 트럼펫, 오보에,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 등이 편성된 대악단처럼 웅장한 연주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소리에 집중해 본다. 신기하게도 협주를 하던 소리는 집중하는 대로 독주를 펼치기도 한다. 이번에는 내 마음의 소리에 집중해 본다. 이번에도 성공이다. 귀를 닫을 수 있는 귀꺼풀은 없지만 귀를 닫을 수 있는 능력을 발견했다. 진정한 어른만이 가질 수 있는 귀꺼풀이 돋아난 것이다.


 저자의 철학에는 동심이 가득하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그 어떤 조각이든 이야기가 되는 밤이다.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밤이면 떠오르는 말풍선에 바늘을 꽂을 필요는 없다. 말풍선은 흐르는 대로 흘러 제각기 다른 모양과 색으로 밤하늘에 둥실둥실 떠오른다. 정글에 찾아온 밤 당신은 어떤 구름을 만들고 있는가. 밤에도 무지개는 뜰 수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은 기묘하지만 우아한 동심을 품고 있다.





나에게 증거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반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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