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 Essay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리스 May 07. 2024

비지배적 집단의 시선

<어른의 대화 공부> 북 에세이

 성소수자인 저자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위해 사회를 향해 오랜 시간 투쟁했다. 그들이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모두가 동등한 존엄성을 갖기 위한 강력한 도구, 법을 다루기 위해 변호사가 되었다. 


 사실 저자들의 커밍 아웃으로 반감이 먼저 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수가 군림하는 사회에서 그들은 본능에 충실했다는 이유 하나로 사회적 약자가 되고 만다. 소수 집단이 다수 집단과 대화하는 방법, 나아가 소수가 다수에게 외치는 정의로운 투쟁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나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소수 집단이 되어야만 사회 제도가 그릇된 것임을 알게 된다.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인정하고 색안경을 벗고 소수를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할 이유다. 





 


 사회의 계급은 없어진 지 오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격차와 그 격차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 그들은 장애인, 유색인, 게이 등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의 자리에 있다. 소수의 집단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다수의 집단을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결함이 없는 사람은 비장애인으로, 이성을 사랑하는 사람을 이성애자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를 마치 비 소수집단이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를 이원론적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대한민국 30대 여성이다. 친정에 가면 장녀이며 시댁에 가면 맏며느리이지만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놀이터에서는 아줌마 또는 이모라고 불리게 되지만 병원에 내원하게 되면 '환자'가 된다. 브런치 스토리 내에서는 '작가'라고도 불리니 내 이름 말고도 나를 수식하는 단어는 여러 개가 존재한다. 놀이터에서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작은 아이에게 나를 편협된 시선으로 보지 말라고 꾸지람을 던질 것인가. 배고프다며 '엄마 밥 줘'라고 부르짖는 자녀에게 엄마도 이름이 있으니 앞으로 엄마의 이름을 부르라고 할 텐가. 


 장례식장에선 검은 상복을 입고 회사에 갈 때는 단정한 옷차림을 하지만 집에서는 목 늘어난 옷을 입는 것처럼, 장소와 시각에 따라 다르게 불릴 수 있다. 그것을 불편해하는 시선 그 자체가 은밀하고 폐쇄적인 집단주의를 만드는 것이리라. 


 피해 의식을 버리고 인정해야 한다. 다수와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뾰족한 돌멩이를 둥글게 다듬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리라. 그럼에도 모난 돌은 있는 법. 모든 사람에게 소수 집단을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다수를 존중하고 관용하되 상처가 되는 말은 지지하지 않아도 된다. 소수자가 정의를 갈망한다면 그것은 기쁨을 찾는 투쟁이리라. 






백인 여성은 인종 문제에서 유색인 남성의 지지자가 될 수 있으며, 유색인 남성은 성별 문제에서 백인 여성의 지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