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자, 바다면 더 좋고>를 읽고
폭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있다. 타자에게 받은 수많은 감정들에 울고 웃었던 일. 대개 금방 일어나 회복할 수 있는 아픔이건만, 유독 아픈 상처가 있다. 곪을 대로 곪아서 농의 깊이만큼 마음의 골짜기도 깊은 것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기라도 한 듯 목놓아 울다가 멍하니 무언가를 응시하곤 이내 실성한 사람처럼 정신을 잃는다. 사랑이 진한 빨간색이라면 이별은 오만가지 붓들이 휘갈겨 찢긴 도화지다.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내려둔다. '괜찮아', '나쁜 자식'이라는 친구들의 위로도 들리지 않는다. 유일한 약인 시간은 왜 이리도 느리게 흐르는지 애석하기만 하다.
지독한 장마도 여름을 알리는 매미의 합창 소리와 함께 사그라든다. 이별의 아픔도 새롭게 찾아온 사랑과 함께 삭아내린다. 사랑은 8월의 여름과 닮았다. 활기가 있고 열정이 가득하다. 길게 내리쬐는 햇살처럼 사랑하는 마음은 태양을 닮았다. 곪았던 상처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이별의 기억은 흐리다. 넘어져도 이내 일어나 우다다 달리는 아이처럼 사랑을 한다. 한 번도 아파본 적 없는 것처럼 사랑을 하는 것이다.
진실한 글에는 힘이 있다. 저서는 사랑을 하는 독자에게는 큰 공감을, 이별을 겪는 독자에게는 말로 전하지 못할 위로가 가득하다. 현실에 마주한 감정에서 잠시 도망가는 것이다. 도망은 스릴이 가득하고 행위 만으로 일탈이다. 옥죄는 지금 여기서 어디로 가면 좋을까. 이왕이면 광활한 바다가 좋겠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경외감이 비치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 나의 감정은 하찮아진다. 이제껏 나를 옭아맸던 상처와 아픔이 그곳에 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겨울이 오는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보라. 나무는 새롭게 돋아날 잎들을 위해 그간 파릇했던 이파리들을 흘려보낸다. 형형색색의 꽃 잎으로 새로운 계절을 알렸던 꽃들도 계절에 맞게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듯 우리네 감정은 돌고 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삶은 시소와 같다. 기쁨 뒤에는 슬픔이 있고 슬픔 뒤에는 기쁨이 있다. 지금 슬프다면 곧 다가올 기쁨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 지금 기쁘다면 그 기쁨을 만끽하라. 영원한 것은 없다. 깊은 슬픔은 그렇게 극복하는 것이다.
시를 닮은 에세이 <도망가자, 바다면 더 좋고>는 사랑할 줄 아는 독자가 읽으면 좋을 도서다. 저자는 자신의 사랑을 함축하고 은유적으로 시문에 담았다. 추억을 곱씹다 단물 빠진 후회를 뱉어내지 않기 위해 오늘의 나로 최선을 다하는 것. 넘어져도 별것 아니라는 듯 일어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