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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브티 Mar 15. 2024

발소리

   남편은 새벽에 잘 일어난다. 일어나서 이방 저방 다니며 부스럭거리며 휴지통도 비우고 부엌도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도 선잠을 깨지만 밑의 집 천장이 쿵쿵 울릴 수밖에 없다.

어느 날 아침 7시 전후에 띵똥! 하는 현관벨소리가 울린다. 이아침에 누구인가 열어보니 아랫집 아저씨다. 가끔 보았지만 인상도 별로였던 아저씨가 “발소리가 시끄럽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남편도 지지 않고 현관 앞에서 아침부터 설전이 붙었다. 각자 안사람들이 겨우 진정시키고 나는 남편에게 얘기를 했다.

당신은 발을 뒤꿈치부터 걷기 때문에 우리가 들어도 마루가 울린다고. 제발 슬리퍼를 좀 신으라고 애원을 해도 들은 척 만 척이다. 아랫집에게는 ‘생활 소음인데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변명은 했지만 아랫집 고충이 이해가 간다. 그 뒤로 남편도 조심한다고 하지만 과체중과 배인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겠는가? 그 뒤로 무슨 이유인지 아랫집은 이사를 갔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은 발바닥 뒤꿈치가 까칠해지고 허옇게 된다기에 다시 슬리퍼를 권유했다. 이번에는 어찌 순순히 말을 들을까? 싶었는데 웬일? 몇 시간 신어보더니 슬리퍼가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단다. 그동안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할 때 좀 신지. 그럼 아랫집과 얼굴 붉힐 일도 없었을 것 아닌가?


 더 기막힌 일도 있다. 친구가 윗집 아이들의 심한 발소리로 큰 싸움이 났다. 친구는 화를 못 이겨 순간적으로 골프채로 자기 집 현관문을 내리쳤단다. 순간 골프채의 헤드가 뽑혀 날아가 문 열고 구경하던 앞집 아가씨의 이마를 쳤다. 피는 주르륵 흐르고, 119가 달려오고, 친구는 출근을 미루고 수습이 되었다. 그 뒤의 얘기가 또 있다. 앞집이 그날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가기로 되어있었는데 못 가게 되는 바람에 위약금까지 물어주었단다. 윗집도 미안했던지 일부를 변상해 주더란다. 그 후 층간소음으로 살인사건이 보도가 되고 나서는 관리실을 통해서만 항의할 수 있게 제도가 만들어졌다. 다행히 윗집은 조심도 하고 아이들도 커가며 많이 조용해졌단다.

소음으로 세 집이 곤욕을 치른 경우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걸어 다니는 고양이도 걷는 소리가 있다. 단지 사람의 귀는 주파수가 동물과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듣지 못하는 것이다. 개는 사람의 네 배가 되는 예민한 청력을 가지고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초고음대의 영역까지도 듣는다고 한다. 사람마다 발소리가 다르고 걷는 스타일이 다르다. 어떤 이는 뚜벅뚜벅, 어떤 이는 스륵스륵 신발을 끌기도 한다. 안정적으로 지속적인 발소리는 같이 가는 사람의 마음까지 편하게 하지만, 계단을 급히 뛰어 내려가는 소리는 상관없는 사람까지 괜히 초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젊은 여자의 또각거리는 하이힐 뒷굽 소리는 경쾌함을 준다.      


 ‘나 죽거든 사람들의 왕래가 잦고 활기 넘치는 어느 뜰 안에 묻어주고, 산책자의 관심

을 끄는, 보기 좋고 기발한 모자이크 장식으로 덮어주기 바라오. 나의 배 위에서 약사의 헌 신발이나 카드점치는 여자의 슬리퍼 끄는 익숙한 소리, 어린 사내아이들 맨발이 찰싹대는 소리, 줄넘기 돌차기 놀이하는 어린 계집아이들 신발 부딪는 소리를 나는 듣고 싶소.

-미셀 투르니에 사진 에세이 중 ‘발소리’-     


 살아있는 사람들은 층간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나는 현실이지만, 땅에 묻힌 사람은 소란하고 생기 넘치는 발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소원을 한다. 발소리를 내는 위층의 아이들도 살아있고, 아래층에서 그 소리를 듣는 나도 현재 살아있다. 묻힌 사람이 그토록 듣고 싶은 우리들의 발소리.

이 봄에 한 발 한 발을 생명력있고 힘차게 디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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