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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Oct 31. 2024

잡탕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성적우수 시상식

성적우수자 시상식 일정이 나왔으니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학교에서 메시지가 왔다. '장학금 신청하라는 건 안 알려주더니...' 하는 생각이 0.7초 정도 머물렀다 지나갔다. 이미 아쉬워할 대로 충분히 아쉬워했기 때문에 빨리 흘려보낼 수 있었고 곧바로 시상식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정을 보니 수업 시간과 별로 겹치지 않았고 겹친다 해도 시상식에 수상자로 참여하는 것은 출결 인정 사유로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참석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자랑스러운 경험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뭐하 그런 걸 따졌는지 모르겠다. 그냥 무조건 가는 거지. 딘스라고 현역 대학생일 때도 들어만 봤던 남 이야기였는데 거기 수석으로 간다니까 확실히 어깨뽕이 차오른다.


학과장님 면담

어제는 장학금 추천서와 관련해서 학과장님 면담을 했다. 처음으로 적극적인 장학금 헌팅을 나서 본 것이다. 복지는 헌팅이라던 보험학원론 교수님의 말과, 성적우수 장학금과 관련한 쓴 경험이 계기가 됐다.


학과장님은 나와 학번이 7년 차이나는 학교 선배였는데 내 학번, 그리고 성적증명서에서의 공백기간을 보시고는 내게 사정을 물었다. 나는 있는 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학과장님이 첫마디를 "잘 왔다."라고 짧게 던지면서 악수를 해줬다. 누군가 과하지 않게 위로해 줄 때의 기분은 역시 괜찮은 것 같다. 응원의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다만 해당 장학에 지원자가 많이 쏠려 결과에 대해서는 기대를 내려놓으라는 뉘앙스의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24-1학기 성적란에 6개의 A+이 도열해 있는 것을 보시고선 "이 부분에서는 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말뿐만이 아니라 이런 계량적인 에비던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말 들을 때 효능감이 또 오랜만에 차올랐다.


7년 차이나는 사람이 학과장을 할 동안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인 내 인생이 이제는 비참하지도 않다. 왜냐면 그렇게 계산하면 거의 세상 모두가 이미 나보다 일찍, 많은 것을 이뤘기 때문에 버틸 수가 없는 것이다. 살기 위해 철면피가 되어버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배우려는 의지만은 분명한데, 열심히 배워서 인생의 다음 학기쯤이 있다면 그때는 A+를 줄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미 배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하지만 배우려면 부끄러워야 한다는 걸 배웠다.


정신 빼놓고 다니기

언젠가부터 내가 정신을 빼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휴대폰, 지갑 그리고 우산이나 자잘한 물건들을 전과 비교할 수 없이 자주 잃어버리고 다니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 탁상 달력과 휴대폰 캘린더 앱, 그리고 휴대폰 메모지에 삼중으로 꼼꼼히 메모를 하면서 생활한다. 근데 어제는 그렇게 마련한 삼중 방어책까지 뚫고 기숙사 호실 점검이라는 중요한 일정을 까먹어버렸다. 결국 무통보 미참여로 인해 벌점 10점을 받았다는 메시지를 기숙사로부터 받았다. 기숙사 살면서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정말 요즘 좀 정신이 빠졌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다행인 건 때마침 내일, 벌점을 일부 상계시켜 줄 이벤트가 열린다. 그거나 한번 해봐야겠다.


모임

이번 주는 오랜만에 자조모임 청년들을 많이 만났다. 1년 사이 많은 것들이 변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참 괜찮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립기도, 새롭기도 해서 좋았다. 요즘 고립은둔청년 지원사업에 참여를 거의 아예 못하고 있어서 이 모임에서도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느낌을 받고 있었는데 누군가 먼저 당겨주니 힘이 됐다.

(레시피 기록: 카페에서 내 플랫 화이트에 각설탕을 여섯 개 정도 넣었더니 너무 달아서 옆에 있던 차이티라테에 들어가는 향신료를 넣어봤다. 그랬더니 꽤 좋은 맛이 돼서 신기했다.)


예술축전 

학교 교양과목 중 예술과 관련된 강의들은 모두 축전에 참여하도록 되어버렸다. 코로나로 몇 년 동안 쉬었던 행사라 그런지 부활에 대한 집념으로 학교 측은 교수님들에게 강제력을 행사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돼서 예정에도 없던 무대에 올라가게 됐다. 준비는 3주 정도 했지만 사실상 마지막에 모든 것이 갈아엎어지면서 연습은 무의미했고 공연 당일인 오늘 리허설하는 과정에서 연습을 했다.


무서운 게, 그런데도 무대 뒤에 있는 분장실에서 학생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거나 서로의 행위들을 지켜보거나 할 때는 모종의 유대감이 또 감돌았다. 사람들에게는 무언가를 같이 겪으며 지나간다는 것이 정말 큰 파급력을 가진다는 생각을 했다.


교수님이 마지막에 모든 것을 갈아엎는 과정에서 내 멘트는 "같이 걸을까, 같이 가줄게."로 완전히 새롭게 바뀌었다. 그래도 내 가치관과 비슷해서 바뀐 문장도 마음에 들었다. 내 앞 학생은 "고백해도 돼? 나도 사랑해."로 바뀌었다며 힘들어했다. 확실히 그거보단 낫다.

음대 건물에 들어가본 것, 제법 큰 무대에 서서 발화해본 것. 다 즐거웠다.


출근부 제출

도서관 국가근로장학 출근부 제출을 했다. 지난달에는 이 문제 처리를 제대로 못 했었는데 번째라고 그래도 알아서 찾아서 했다. 운 좋게 그때 옆에 있으면서 헤매던 나를 도와줬던 친구 생각도 났다. '나는 이 친구에게 뭘 도와줄 수 있지?'라거나 '그때로부터 벌써 달이 지났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적 같은 일부터 숨고 싶어지는 일, 잘못한 일과 잘한 일. 행복한 일과 불행한 일. 자랑스러운 일과 후회되는 일. 오늘도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 하루였다. 이원론적 사고로 라벨링을 하려는 것에서 벗어난 관점에서 보자면 이 하나의 하루는 어쩌면 완벽한 하루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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