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나를 흔들고 현실이 나를 또 한 번 흔든다. 그 과정에서 이것저것 해결을 하느라고 그만 마음이 다시 바빠져서 나는 여유를 잃어버렸고 그 결과 생활의 통제까지 잃었다. 그러다 보니 글도 잘 쓰지도 읽지도 않게 됐다. 다행히 할 것들을 이제 어느 정도 해놨기 때문에 오랜만에 글도 쓴다. 밀린 글도 읽어봐야겠다. 마음이 바쁜 것이 곪아서 문제가 되거나 만성화되기 전에 중심을 잘 잡은 것 같다.
텍스트 기록이 아닌 계량적 수치로 남아있는 나의 최근 행적을 돌아봤다. 다른 게 아니라 몇 달 동안 간식을 얼마나 사 먹었는지를 본 것이다. 소비라는 것이 심적인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흔들렸었는지의 척도로 간식비를 봤다. 간식비가 내 마음의 지진 강도나 내 정신 상태의 파라미터라는 생각이 들어 왠지 한심하면서도 웃겼다. 최근 간식비가 현저히 늘긴 했고 절제를 좀 더 할 필요를 느꼈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마음이 아니라 신체 건강을 위해서도.
얼마 전, 내가 거주 중인 기숙사 호실 위층에서 누수가 되어 내 방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게 됐다. 그래서 7층의 다른 방에서 지내고 있다. 생각보다 수리가 오래 걸려서 열흘 간은 두 집 살림을 해야 할 형국이다. 여기서 오는 자잘한 문제들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조금 재밌다고 느껴진다. 아마 다른 환경을 접하는 데에서 오는 재미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예를 들면 5층 방보다 7층 방이 아침에 채광이 훨씬 잘 된다든지 하는 것이나, 샤워기헤드가 수압에 주는 차이를 느껴본다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빈 방에 들어가니 정리가 잘 되어있어서 공간이 훨씬 깔끔하고 쾌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5층 방 옷장과 책상을 한번 대충 정리했다. 필요 없는 것들이나 두고서 쓰지 않는 것들을 과감하게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코칭
지난 토요일, 코칭 세미나에 참석했다. 세미나의 대상인 건 아니었고 학부생들 몇 명에게 코칭받을 시간이 주어진다고 하여 참석했다. 나는 교수님께 코칭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라이프코칭이라는 느낌이었어서, 나는 연애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앞부분에 먼저 했다. 내 마음에 대해서도 깊고 고요하게 마주 보게 되는 대화가 오고 갔다.
뒷부분에는 이제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은 듣자마자 내가 생각이 구름을 잡듯이 정신없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하셨다. 그리고 진로 코칭 내내 앞에서 감정적인 이야기를 할 때와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셨다. 따끔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따끔한 말은, 사실은 내가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가족이 대단한 것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아, 그렇구나. 나도 극단으로 내달리지 않고 버티면서 할머니나 조카를 돌봤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부모님이 대단한 거였구나.
네가 10년이나 집에 있었는데, 나이도 있는데, 너무 직장인같이 편안하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그건 남들도 다 하는 거야."
그것들이 소모적이니 생산적이니, 왜 생산적인 것을 할 생각은 안 해봤니. 생각만 계속하면 뇌에서도 했다고 생각해 버려. 뭘 했는데. 네가 지금 생각하는 것들과 전공이 아무 관련이 없네? 대학을 안 나와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것들은.
14년 전부터 느꼈던 것들이기도 했고,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 마음이 당연히 편하진 않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요.' 하는 반발감도 들었다. 그러다가도 정말로 내가 지금 이상의 것을 해낼 수 있는데도 안주하고, 과거의 맥락에 자꾸 나 자신의 한계를 두려고 하는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년이나 방에 처박혀 있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이 정도만 해도 잘하는 거야, 졸업만 할 생각으로 나온 건데 뭘 그렇게 꿈이나 자아실현,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 대충 살아봐. 잘하려고 하지 마.
여러 가지 관점들이 떠오른다. 나는 어떤 박사의 말처럼 성취한 게 없어서 내 고통밖에 자랑할 게 없는 사람이라 고통을 전시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실패를 통해 자신을 만나고 삶에 도전 중인 사람일까.
모든 게 내 업보긴 하다. 도망치지는 않겠다. 정체성 자산을 쌓을 20대를 허비했고 30 중반이 되었지만 학부생에 머물러 있다는 게 차가운 현실이 맞다. 남들의 속도를 신경 쓰지 말고 내 삶을 내 속도로 온전히 살아가라는 말이 맞는 걸까, 한참 늦었으니까 정신 차리고 뭐든지 당장 뛰어들라는 말이 맞는 것일까. 이 문제는 가치관의 차이인 걸까 아니면 정답이 있는 걸까.
요즘 빠지기도 했고, 정말로 진로 관련해서는 생각만 하고 단 하나도 실제 행동으로 옮긴 것은 없다. 그래서 교수님의 말에 소위 "긁혔다." 코칭이 끝나고 창업과 관련한 과목의 교수님께 여쭤봤고, 교내 창업활성화센터에 메일을 보냈다. 생각만 하는 나에서 조금씩, 조금씩 해나가야겠다. 산이라든지, 서울이라든지 하는 간단한 대상에 대해서는 행동으로 옮겼지만 진로문제는 역시 힘들긴 하다.
도움을 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그래도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은 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실까. 나는 무엇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알려주실 수 있나 하고 도움을 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