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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호 Dec 09. 2024

레몬청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복지관에서 청년들과 레몬청을 만들었다. 지난번엔 조금 맛이 없게 만들어졌는데 레몬 자체의 문제와 흰설탕을 사용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 부분이 개선됐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있었는데, 마지막에 레몬설탕물과 레몬을 유리병에 담는 과정에서 1:1 비율 맞추기가 잘 안 됐다는 것이다. 레몬슬라이스를 먼저 넣었는데 레몬을 많이 넣느라 설탕레몬즙이 들어갈 자리가 충분치 못했다. 유리병이 너무 작아서 설탕에 버무린 레몬과 설탕물 자체도 많이 남아버렸다. 유리병을 좀 큰걸 써서 재료가 전부 남지 않게 담으면 비율이 안 맞을 일이 없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싶다. 다음이 있다면 유리병 크기만 개선하면 될 것 같다.


레몬청을 만드는 동안에는 사람이 많아서 힘들어하는 청년도 있었고, 알아서 착착 일 합을 맞추는 청년도 있었고, 굼뜬 청년도 있었다. 최근 일을 시작해 퇴근 후 바로 달려온 청년은 예상보다 작업이 어려웠는지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렇게 복지관의 방 하나짜리 공간에서 복닥복닥 자기 할 것을 하고, 장난도 치고,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귀여운 노동을 함께 했다. 나는 레몬 냄새가 함께 하는 그 공간의 풍경이 참 좋았다. 마음에 어려움이 있는 청년들이 모였지만 그 순간에는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쾌활하기만 한 분인줄 알았던 한 청년은 저녁 시간에 밖에 있는 것을 힘들어하셨다. 레몬청이 완성되자 본인 몫을 가지고 바로 떠나셨다. 꽤 여러 번 봤다고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으신지 몰랐다. 겉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진짜 어떤지는 알 수 없는 건데 쉽게 생각했구나 하는 반성을 했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으면 당연하게도 자조모임에서 만나지는 못했을 텐데.


소감을 나눌 때는 몇몇 청년이 많이 변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전에는 그런 말을 하는 분이 아니었는데 가족에 대한 따뜻함을 표현하시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꼈다. 가족을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 나도, 청년들도. 특히 고립은둔청년들은 부모님과 관계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내 경우에는 집에서 10년 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았지만 대화를 일절 하지 않아 집을 나왔을 때는 말을 너무 더듬을 정도였다. 부모님과 나 사이의 불편한 긴장과 침묵이 사라지고 나니 내 안에 평생을 묵혀 온 답답함도 사라졌다. 내 정신적 자유를 속박하고 있던 두꺼운 쇠사슬은 내가 풀려고 하니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풀려서 사라졌다. 청년들에게 본인들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스스로 풀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이 속히 찾아왔으면 좋겠다.    


복지사님은 온갖 수고는 본인이 다 하셨는데 내가 레몬청 모임을 기획해 줬다며 내 덕분이라는 인사를 하셨다. 민망하고 너무 겸연쩍었지만 동시에 나도 복지사님처럼 세상에 사랑을 늘리고 따뜻함을 전하며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레몬청 작업을 하는 복지사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했다.       


기숙사에 돌아와 레몬청을 용량이 50L가 좀 안되는 냉장고에 넣고 흐뭇하게 바라봤다. 다른 분들도 나처럼 레몬청을 많이 사랑해줬으면,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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